▲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올해 1학기 나의 논술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어린 왕자>를 조금은 특별하게 만났다. 어린왕자의 마지막 장면을 영문과 우리말 번역을 함께 읽으며 공감 구절을 필사했다. 이 수업을 통해 우리는 한 그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풍경’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바로 어린 왕자라는 이름으로….

어린왕자는 오랜 베스트셀러로 누구나 아는 책이고 다들 한번쯤은 읽어본 책이다. 어떻게 보면 식상한 책이다. 하지만 어린왕자만큼 매번 읽어도 지겹지 않은 책은 없는 듯하다. 어쩌다 보니 해마다 어린왕자를 읽게 되었다. 나의 이런 경험 탓일까? 나의 어린왕자에 대한 애정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싶어졌다. 삶의 단계마다 다르게 와닿는 어린왕자라는 책의 묘미를 말해 주고 싶었다. 내게는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에 가슴 설레었던 스무살의 어린왕자와 우물에서 물 마시는 장면에서 울어버린 마흔의 어린왕자가 달랐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전편을 다 읽을 수 없기에 마지막 장면을 선택했다. 누구나 다 어린왕자를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의외로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 올해 첫 논술 수업이 윤동주의 ‘별헤는 밤’이었다. 윤동주가 하나 하나 세었던 밤 하늘의 별이 내게는 어렴풋이 어린왕자의 별로 떠오른 게 그 시작이었다. 수업에서 아이들은 어린왕자를 읽고 이 마지막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가장 공감가는 구절을 필사하고 그 이유를 썼다. 저마다 예쁜 색깔 펜으로 그리고 필사하며 어린왕자의 별을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집에 어린왕자가 있는데 이제는 읽어봐야겠다고 말했고, 어린왕자가 유명한 줄 알았지만 이런 내용인지 처음 알았다고 마지막 장면을 천천히 읽어보니 뭔가 슬프다고 고백같은 글을 써냈다. 수업은 끝났지만 학생들에게는 저마다 그들의 인생에서 어린왕자와 함께하는 서사가 시작될 것이다.

너무 서두가 긴 듯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전의 독서교육이 “책을 많이 읽어라.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식의 명령 혹은 당위였다면 이제는 친절한 독서 안내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당위에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니 그것은 독서가 아닌 단순히 책의 글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행위였다. 아무도 독서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에 생긴 비극이다.

그러나 이 비극(?)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나의 독서력이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경우 지난한 시간이 흘러 서른 둘의 나이에 독서라는 행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나 선배의 몫은 후배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법. 그래서 이번 1학기 논술 수업의 주제는 아이들이 책 읽는 행위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으로 두었다. 어떤 사소한 글이라도 읽고 친구들과 읽은 내용을 중심으로 수다 떨고 글로 써보게 하였다. 아이들은 논술 수업을 통해 좋은 책을 많이 소개 받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써보며 똑똑해진 것 같다고 한다. 아이들의 이런 평가가 다음 학기 수업에서는 “어떻게 책읽구로 해보꼬?”로 이번 여름 방학을 고민하며 지낼 것 같다. 고통이면서도 즐거운 상상의 시간이 되리라.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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