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장르는 건축물의 종류와
멜로디는 외양의 아름다움에
화성진행은 기둥·보와 비견돼
‘건축은 동결된 음악’ 말에 공감

▲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용음악학도

지난 2월 교수직을 정년퇴임하자마자 모(某)대학교 실용음악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새로운 전공인데다 늦깎이 대학생이니 좇아가기가 꽤나 벅차다. 이 대학은 강의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므로 교수와 학생간의 직접 접촉이 거의 없다. 대신 인터넷 토론이 매우 활발하다. 재즈화성학 담당 교수가 드디어 토론방 주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주제는 ‘노래를 들을 때 대중의 입장에서 멜로디, 화성, 가사, 노래장르, 악기구성의 다섯 가지 요소 중 어느 순서로 들리겠는가? 자기의견을 쓰고 상호 토론하라’였다.

실기가 약하니 이런데서 점수를 따야할 뿐 아니라 담당교수는 내가 비록 전공은 다르지만 교수출신인 것을 알고 있으므로 특별히 주목할 것 같아 더욱 부담이 갔다. 우선 전에 읽었던 책들을 상기해 보았다. 관념철학의 대가 헤겔(Hegel)이 베를린대학에서 했던 음악 강의 노트가 생각났다. 헤겔은 ‘음악과 가장 가까운 예술영역은 건축이요,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라고 했다. 호오! 건축이 음악이요 음악이 건축이라~. 하기야 요즘엔 아름다운 외관과 주변과의 조화 등을 추구하는 심미안적 건축설계가 내진안전구조, 전기배관 등을 다루는 공학적 구조설계보다 더욱 관심의 대상인지, 건축공학과가 공대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건축에 대비해보자. 우선 노래장르를 건축물의 종류에 맞춰보면 어떨까. 김종서의 노래(록, Rock)는 삐쭉빼쭉 철근건물이고, 주현미의 노래(트롯, Trot)는 초가집이며, 신승훈의 노래(발라드, Ballad)는 한옥기와집…. 나는 한옥을 좋아하고 철근건물이나 초가집은 그다지 애착이 안 가듯이 트롯(초가집)을 좋아하는 사람은 록(철근건물)을 들으면 정신없이 시끄럽다고 느낄 게다. 대중의 선호가 우선 뚜렷이 갈리는 부분이렷다.

둘째로 음악에서 으뜸화음, 딸림화음 등의 화음을 배치하는 것(화성진행)은 건물에 비하면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나 대들보의 배치에 해당하지 않을까. 건물의 튼튼함은 우선은 기둥과 보에서 나오고, 좋은 화음진행 역시 탄탄한 노래의 핵심요소다. 셋째로 멜로디는 그 기둥과 보를 연결하고 감싸는 지붕과 벽, 창문의 모양과 크기, 색깔 등 소위 건축물의 겉보기 아름다움을 표상한다. 그렇다. 노래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건축물의 아름다운 겉모습에 대비된다. 노래의 가사는 건축물의 용도 그리고 이를 위한 인테리어에 해당하지 않을까. 체육을 위한 공간, 책을 읽는 공간은 각각 그에 맞는 기둥배치와 인테리어 특성을 가져야 하듯이 노래가사에 따라 장르와 화성이 다를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악기구성은 건축물의 재료, 재질에 대비될 것 같다. 초가집을 짓는 데는 나무와 흙을 재료로 사용해야지 철근콘크리트를 쓰면 이상하듯이, 록은 삐용삐용 전기기타와 쾅쾅쾅 드럼으로 무장해야 제 맛이다.

건축물을 대하는 관람객의 입장에서 볼 때 감상순서는 명확하게 이러하다. 우선 건물의 종류(음악의 장르)가 마음에 닿아야 눈길이 갈 것이요, 이어서 그 건물의 겉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멜로디), 어떻게 독특한지를 이리저리 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마음에 드는 모습의 건물이라고 느껴졌다면 이제 이 건물의 용도가 뭔지(가사) 궁금해 하면서 자연스레 발길은 건물 안을 향하게 된다. 그리곤 기둥과 보의 모양과 크기와 개수와 배치(화성)를 보게 되고 이윽고 손으로 기둥과 벽과 바닥의 재질을 만지고(악기구성)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이러한 내용을 토론방에 올렸다. 부끄럽게도 가장 많은 지지표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건축가 중에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많은 사실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용음악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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