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과 함께 삶을 정리하던 과거와 달리
미래의 변화상에 맞추려는 적극적 자세로
나이듦을 생의 완숙과정으로 받아들여야

▲ 이근용 영산대 교수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우연히 들은 노래 가사 중에 ‘나이가 들어 피부가 탄력을 잃고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최근 참석한 워크숍에서 강사가 “50대 후반 이상의 정년을 앞둔 분들은 이제 인생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 있다”고 한 말도 공감이 간다.

무언가를 꿈꾸며 살아오다 어느 순간 꿈을 잠시 접어둔 듯한데, 시간은 훌쩍 지나 꿈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정리할 때가 돼버린 데서 오는 당혹감이 크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그저 늙고 쇠약해지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고 익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그래서 더욱 위안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막상 익어가는 것이 무엇이고 정리를 어떻게 해갈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답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예전엔 전공하고 연구해 오던 분야에서 미진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정년 무렵쯤에 정리하고, 그래도 더 연구를 해야겠다고 판단되면 정년 후까지 이어서 평생의 연구로 삼으면서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교수직에 있던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근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융복합 등의 키워드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일면서 과거의 전형적인 정리 패턴을 따르는 것이 어렵게 됐다.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대학마다 단일전공 이수 체제를 융복합 전공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해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비한 교육을 시키기 위해 교육개편을 여러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교수들도 과거처럼 하나의 전공만을 연구·교육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융합 연구 방향과 분야를 찾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전공에서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과 컴퓨팅 마인드를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미래에 필요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세가 대학사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몰고 올 산업과 노동 현장의 변화를 포함해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가져올 변화의 파고를 진단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는 차고 넘친다. 국제미래학회가 재작년에 펴낸 <대한민국 미래보고서>에는 2030년의 ‘30가지 예측’이 실려 있다. 몇 가지만 들어보면 ‘2030년까지 모든 의사나 병원 방문의 80% 이상이 자동화된 인공지능 컴퓨터로 대체된다.’ ‘2030년까지 모든 음식점의 요리작업 90%가 3D 음식프린터로 프린트된다.’ ‘2030년 코딩, 컴퓨터프로그래밍은 모든 작업 20% 이상에 필요한 핵심기술로 간주된다.’ ‘2030년 석유, 휘발유는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원자력은 구식이 된다. 천연가스, 석탄도 무용지물이다. 모든 새로운 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에 의해 제공된다.’와 같은 내용들이 있다.

보고서에는 또 10년 뒤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옥스퍼드대학교의 예측, 2030년까지 인간의 일자리 중 20억 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의 예측도 소개돼 있다.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미래 혁신적인 기술인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기술, 3D프린터, 드론, 무인자동차가 2020년대에 가장 많이 성장해 관련 직업이 많이 탄생할 것이라며 세부적인 직업소개를 하고 있는데, 10년 후 일자리의 60%는 아직 탄생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향후 10년 안에 탄생하는 미래 유망 일자리 중에는 증강현실 건축가, 지역장소 전문가, 불필요한 데이터 관리자, 도시농업 관리자, 소셜교육 전문가, 풍력터빈 전문가, 새로운 과학철학·윤리과학자, 노인돌보미 서비스 제공자 등이 포함돼 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여러 우려를 낳기도 하지만 가능성의 세계로 열려 있기도 하다. 나이 들고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 되려면 정년이 돼서도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갖고, 정년 이후에도 여러 직업과 전문분야를 융합적으로 통합해 보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면 그 속에서 충분히 숙성된 사고와 지혜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늙은 노년이 아니라 익은 노년세대가 청년세대, 중장년세대와 협업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고, 미래 세대의 앞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같이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앞에는 당장 모든 세대가 지혜를 모아 해법을 찾아야 할 신고리 5·6호기 문제가 있다.

이근용 영산대 교수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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