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국립산업기술박물관 건립, (전국) 당신은 세금을 더 낼 의사 있나요?”

▲ 경상일보 자료사진

박 前대통령 울산1호 공약
규모 6.5분의 1 축소 불구
예타방식 탓 통과 불투명
도시 인구규모가 성패 좌우
비수도권 절대적으로 불리

수도권 주민들에게 “국립산업기술박물관(국립산박)을 울산지역에 건립하려고 하는 데 당신은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그것도 다른지역 일에 세금을 더 낸다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문(愚問)’ 같은 설문조사 방식에 울산의 역점사업인 국립산박이 애초 1조2000억원에서 1800억원 규모로 쪼그러든 것도 모자라,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 예비타당성조사 발표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통령 공약으로 추진된 국립산박이 불합리한 예타의 대표적인 ‘희생양 사례’가 되지않을까 지역사회의 우려가 크다.

◇위기의 국립산박…울산시 비상

 

울산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르면 8월 내 국립산박에 대한 예타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31일 밝혔다. 당초 KDI는 올해 상반기 예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조기대선 정국과 새정부 출범 등의 영향으로 다소 연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추진중인 이 사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울산 대선공약 1호사업이다. 국립산박은 애초에 사업비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서울 용산지역 20만㎡에 최소 관람수요 300만명 규모(총면적 10만여㎡)의 세계 최대 규모로 지을 계획이었다. 정부의 계획을 입수한 울산은 곧바로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박 전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채택되면서 울산 건립이 확정됐다.

하지만 사업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조2000억원의 사업비를 4393억원으로 줄여 기획재정부에 신청했지만 기재부는 이마저도 축소해 3863억원으로 정해 예타를 맡겼다. 예타 과정에서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나오면서 사업비는 1000억원까지 쪼그라들어 예타를 재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울산시가 국립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며 반발하면서 사업비는 1865억원으로 조정된다. 설상가상으로 6.5분의 1 수준까지 축소된 건립계획마저도 예타의 벽을 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울산시에 비상이 걸렸다.

◇비합리적 예타 방식에 난도질

국립산박이 무산위기에 내몰린 직접적인 이유는 ‘도시의 인구규모’에 사업의 명운이 좌우되는 불합리한 예타규정 때문이다.

기재부의 ‘예타 운용지침’에 따르면 비시장가치재(박물관, 도서관, 생태공원 등)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는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 등 3가지 항목을 분석한다. 항목별 가중치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경제성이 40~50%, 정책성이 25~35%, 지역균형발전이 20~30%다. 가중치가 가장 큰 경제성이 결국 예타의 성패를 사실상 좌우한다. 비시장가치재에 대한 경제성(B/C)은 CVM(조건부가치측정법)을 주로 활용한다. CVM은 가치 측정이 어려운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할 때 상황을 가정하고 국민이 이를 위해 세금을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묻는 방법이다.

가령 박물관을 지을 때 1000가구를 무작위로 뽑아 ‘울산에 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드는 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얼마를 낼 수 있는지, 아예 낼수 없는 지’ 설문조사하는 방식이 CVM이다. 설문조사에서 가구당 내겠다는 세금의 평균이 편익값(B)이 된다. 다시 말해 분모인 비용(C·사업비+운영비) 대비, 분자의 편익(B·설문조사)을 얼마나 높이냐가 예타 통과의 최대의 관건인 셈이다.

◇‘우문(愚問)’ 같은 설문조사

그런데 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비수도권 지역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편익을 결정짓는 1000가구가 도시의 인구수에 비례해 분배되기 때문이다. 예컨데 전국 인구의 22.8%를 차지하는 서울에 228가구가 배정된다. 경기도 24.3%, 인천 5.8% 등 수도권만 52.9%(529가구)에 달한다. 수도권 주민에게 “울산에 박물관을 짓기 위해 앞으로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 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극히 ‘우문(愚問)’ 같은 설문조사 방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울산지역의 인구는 전국의 2.3%에 불과하다. 1000가구 가운데 23가구만 울산에 배정된다. 불과 2.3%만의 긍정적인 의견으로는 편익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18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지만 경제성 확보가 난망이 예상되는 이유다. 국가 예산의 낭비요인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예타제도는 필요하지만, 사업의 당위성을 따지기 보다는 인구규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현 예타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목소리가 비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울산시 또한 김기현 시장을 필두로 비수도권의 대선공약을 포함한 대형사업이 이행되기 위해서는 예타를 면제하거나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중앙정부에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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