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보완 위한 사회적 합의제
성공요체는 자발성…정부주도는 곤란
원전관련 ‘에너지대계’ 합리적 결론 기대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로 출발했으나 ‘녹조라떼’에 머물렀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화려한 수사로 시작했으나 ‘창조승마’로 끝나고 말았다. 새 정부에서는 ‘사회적 합의’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교통사고 합의 정도만 알고 있는 일반인들로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현대 국가는 국민투표로 의원과 행정부 수반을 뽑아 국민을 대리해 정책을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는 정치적 이해, 이익집단과의 결탁 등으로 시민 생각과는 동떨어진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대의제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시민들의 자발적 협의에 맡기고, 여기서 정해진 의사 즉 ‘사회적 합의’를 의회가 추인해 합법화 하는 ‘사회적 합의주의(coporatism)’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회적 합의기구가 노사정위원회다. 현행 법규에 규정된 ‘국민투표제’ ‘주민 투표제’ ‘각종 공청회’ ‘국민참여재판’ 등도 크게 보면 사회적 합의제의 일종이다. 법률 규정은 없지만 ‘여론조사에 의한 결정’ ‘공론조사에 의한 결정’ ‘시민배심원제에 의한 결정’ 등도 사회적 합의의 한 방법들 이다.

당리당략에 찌든 대의민주주의 보완을 위해 사회적 합의제가 필요한 측면이 있고 유럽 일부 국가는 정치·행정 권력이 사회적 합의기구로 넘어 갔다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적 합의제 논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민 의식이 이를 수용할 만큼 성숙해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회적 합의제의 성공요체는 자발성에 있다. 시민사회에서 토론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발적으로 방식이나 절차가 정해지고 제도화 되어야 그 실효성이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정부가 나서서 방법과 시한을 정해 합의를 유도하는 하는 것은 공정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자칫 정치적 쇼로 오해 받을 우려가 크다.

정부가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의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제시한 ‘시민배심원제’는 시민의식의 미성숙성, 자발성의 부족, 공정한 배심원단 구성의 어려움 등 뿐만 아니라 사안의 불명확성, 법적 분쟁의 가능성 등의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시민배심원제는 아마추어 배심원들의 찬·반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안이 단순 명료해야 한다. 이번 사안 쟁점이 탈원전 혹은 원전지속의 문제인지, 탈원전은 정부 방침으로 정해 놓고 현재 진행 중인 새 원전 공사의 중단 혹은 계속의 문제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은 근거 법률이 없어 그 결정의 무효를 다투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고, ‘원자력안전법’상 공사 중단의 권한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있는데, 과연 국무회의 의결로 공사 중지가 가능한가 하는 부분도 법적 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합의제가 잘 확립된 유럽의 국가들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 합법화 돼 있다. 즉 의사결정이 시민들의 합의기구에 의해 이루어지면 의회는 그것을 존중해 추인해주는 전통이 확립돼 있어서 법적 시비의 여지가 없다.

새 정부가 다소 성급하게 사회적 합의를 들고 나온 감은 있어 보이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충분한 시간을 두어 공론조사를 하고 정부는 그 결과를 존중해 국회와 협의 후 결정함이 더 이상의 논란도 없애고 사회적 합의제의 씨앗도 심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라듐과 프라듐을 발견한 마리퀴리 부인은 노벨물리학상 시상식에서 “이 방사능 물질을 잘못 사용하면 인류에 큰 재앙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인간이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류가 과연 이 방사능 물질을 잘 사용할 만큼 성숙한지도 의문이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악마의 불로 단죄를 받고 있지만 고리1호기가 첫 가동한 1978년. 국가 산업화에 목말랐던 그 시절에는 희망의 불이었다. 단죄를 너무 서둘지 말고 성숙한 토론을 통해 에너지 백년대계를 정하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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