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고상지 도독은 광개토태왕의 하명서를 읽고 즉시 박지 집사에게 태왕의 명을 받들어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박지는 세작활동을 강화해 보고하는 것은 별 문제없었지만 가야의 아이를 고구려 왕경으로 올려 보내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

‘아이를 고구려에 보내 거련 태자의 동무로 삼는다?’

자신의 막내아들 구야를 고구려 왕실로 보낼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아들이 태왕의 밑으로 가 가야왕으로 책봉되어 내려오면 자신은 상왕이 되고 박씨 가문은 대대로 대가야의 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거대한 장애물을 만났다. 바로 고상지 도독이었다.

고상지 도독이 박지에게 말했다.

“집사의 막내아들, 구야는 우리 태자보다 나이도 한 살 많은데다 칠뜨기 같아 안 되네.”

박지는 도독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지만 ‘예, 그렇습죠’하며 습관대로 굽실했다.

“나는 말이야. 후누 장군의 아들 꺽감이 맘에 들어. 무골에다 영리하고 위엄도 있어 태자의 동무가 될 만하지. 이 사람아, 구야를 올려 보내면 내가 폐하에게 큰 욕먹네.”

“헤헤, 그렇고 말굽쇼.”

박지는 헤헤거리고 굽실거렸지만 웃음 속에 칼을 품었다.

‘이 돼지 같은 놈,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온갖 재물과 여자를 다 갖다 바쳐 충성을 했더니 내 자식을 칠뜨기 같다고? 이 놈, 누가 먼저 뒈지는지 한번 해보자.’

“도독님, 제가 오늘밤은 가야 최고의 미인으로 접대하겠습니다.”

“글쎄, 늘 가야 최고의 미인이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진짜 최고를 데리고 와보게.”

“오늘밤은 믿으셔도 됩니다.”

박지는 메밀눈을 유난히 반짝이며 대정전을 나왔다.

 

수경은 고상지 도독이 꺽감을 고구려로 보내 죽이려 한다는 박지의 말을 듣고 황급하게 어라성 왕궁의 침전으로 달려 나갔다. 비단금침이 놓인 황동 침대에는 비만한 고상지가 벌거벗은 몸으로 돼지처럼 나자빠져 있었다. 고상지가 수경을 가늘게 실눈을 떠서 보다 알몸으로 벌떡 일어났다.

고상지가 수경을 보며 감탄하며 말했다.

“오늘 밤만은 집사의 말이 거짓이 아니로구나. 정말 가야 최고의 미인이로다.”

“황송하옵니다.”

“황송할 것까지는 없고. 속미인은 따로 있으니 옷을 벗어 보게.”

“예, 벗기 전에 청이 있습니다.”

“청이 무엇인가?”

“제 아이 꺽감을 고구려로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아니, 그럼 자네 아이가 꺽감이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수경은 산처럼 이립한 대근과 왕방울만한 부랄이 덜렁거리는 도독에게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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