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성찰을 거쳐 우화한 매미는
소음이라는 타박과 핀잔 받으면서도
한여름 치열하게 자기존재 드러내

▲ 여름 강변 정윤하作  -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한껏 자란 나무가 있는 한 여름 강변. 나뭇잎은 바람결을 따라 진초록으로 번들대건만 그 그늘은 오히려 차분해서 평온하기까지 하다.

오늘 아침, 그 사납게 울어 젖히던 매미 소리가 많이 약해져 들린다. 때로는 폭군처럼, 때로는 점령군처럼 도심의 적막을 흔들어대던 기고만장한 소리가 잦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간 매미는 참으로 많은 욕을 먹으며 찜통같은 여름을 버텼다. 7월 염천에 폭염을 견디며 고래고래 사랑타령이나 하는 그의 고함소리는 정말 가관이었다. 주위의 소음이 심할수록, 수은주가 40℃에 육박할수록 그 소리가 한계를 넘기가 일쑤여서, 사람들은 삿대질을 하며 온갖 짜증을 내고 기자들은 앞 다투어 소음도가 70~90데시벨로 지하철 소음과 맞먹는 수치라는 측정 결과를 발표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매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악을 써 댔고 인간들은 핀잔과 타박을 한 자루씩 쏟아냈으니 이처럼 세상의 미움을 독차지하는 가련한 곤충이 또 있겠는가.

게다가 동화에서마저, 농부들이 비지땀을 흘리는 농번기에 나무그늘에서 세레나데 나부랭이나 뇌까리는 매미를 천덕꾸러기에 비유하여 베짱이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부지런하다는 개미나 벌과 대조하며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필자도 10여 년 전 첫 시집에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적이 있다. “무언가 붙잡고/하염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느니라/울어도 울어도 득음의 길은 멀고/한없이 서러워지는 때가 있느니라//날개를 단다는 것은 함정이었다.”<매미> 전문

귀여움보다 밉상으로 기억되는 매미는 사실 많은 시련을 겪은 곤충이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국민학교 여름방학의 단골 숙제로 ‘곤충채집’이라는 미명하에 대량으로 희생되었다. 그때 매미의 등에서부터 배 쪽으로 실핀을 무자비하게 관통하여 찌르고, 간격을 맞추어 고정시킨 후 썩지 않게 나프탈렌을 넣어 개학 때까지 보관했다가 제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교육의 한 과정이 생태계 파괴에 한몫을 담당했던 시절의 무지막지하고도 어두웠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도 매미의 수난은 계속된다. 동남아에서는 물방개와 매미튀김이 최고 인기 간식이요, 중국만 하더라도 땅속을 뒤져 매미의 전생인 굼벵이 요리가 귀뚜라미와 함께 고단백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오직 기는 재주 하나로 평균 10년의 세월을 군함도 같은 막장 속에서 보내고 지상으로 올라와 묵은 가운을 벗어던지자마자 포획되어 150℃ 이상에서 튀김이 되거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혀끝에서 또 다시 씹히기 일쑤인 매미에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 필자는 가수 ‘싸이 흠뻑쇼’를 관람하였다. 그는 한때 세상의 손가락질에 모진 시련을 겪은 바 있는 가수이다. 그러나 그의 노래에는 아픔이 전혀 배어 있지 않았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는 그의 가창력 때문에 그곳에 가지는 않았다. 그의 창법은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았으며 오직 단출하고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됨에도 그리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차화통 삶아먹은 듯한 폭발적 성량과 죽기살기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의 장기이다. 네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세상에 대한 풍자, 어쭙잖게 甲질하는 자들을 따갑게 조롱하고 양심을 잃은 인간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단순한 가락에 실어 무한반복함으로써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 운집한 2만여 관객들은 광란하듯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깜짝 출연한 자이언-T와 비가 떠나간 뒤에도, 썰렁한 아재 개그와 정규공연보다 더 재미있는 앵콜공연까지 관객들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그의 마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필자는 몸과 마음이 흠뻑 젖은 채 자정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그가 ‘생각하는 가수’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 위로 오버랩되는 매미, 인간들의 감당할 수 없는 지적질을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한 가락으로 노래하는 매미의 경우가 그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가 위의 졸시를 썼던 10여 년 전에 산란한 그 매미 알이 은둔의 세월을 견디고 지상으로 올라와 지금 내 앞에서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다만 종족 번식을 위해 짝짓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강산이 한 번은 더 변할 만한 세월이 흘렀으니 매미의 생각도 더 깊어졌을 터, 깊은 성찰의 기간을 거쳐 우화한 후 한 세대를 마감하는 동안 매미에게는 생물학적 탄생보다 더한 인식적 탄생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매미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쌓은 내공으로 이열치열하며 치열한 죽음을 위해, 혹독한 자기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생이 없는 생애에도 서두르지 않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시인이라면 비장미 가득한 스테디셀러 한권 출판하는 것이고 음악가라면 최대로 압축된 히트곡 한 곡 남기는 것이며, 수도승이라면 죽비소리처럼 절제된 법어 한 마디 ‘할(喝)!’ 하는 것이다.

매미와 인간은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공존의 대상이지 결코 배척과 질시의 대상이 아니다. 타박과 핀잔을 받으면서도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매미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입추가 내일모레이니 얼마 아니 되어 가을이 올 것이다.
 

 

■ 권영해씨는
·김춘수 시인 추천으로 ‘현대 시문학’에 등단(1997년)
·울산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울산광역시 문화예술 부문 공로상(2007년)
·시집 <유월에 대파꽃을 따다>(2001년)
<봄은 경력사원>(2015년)
·현대청운고등학교 교사

 

 

 

■ 정윤하씨는
·개인전 4회(대구, 울산, 서울, 부산)
·한·중교류전(장춘·울산)
·6대 광역시 및 제주도 미술작가 초대전
·울산·광주구상작가 교류전
·울산문화예술회관 개관 15주년 기념 초대전
·울산미협, 울산미사랑작가회, 울산구상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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