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수경이 맹랑하게 말했다.

“벗으면 똑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위풍당당한 체구와 말만한 대근은 태왕도 도독님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설마 그럴까?”

수경은 속으로는 ‘이 놈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 네 놈이 내 아들을 단칼에 죽인 것을 그냥 둘 줄 알았더냐. 이렇게 해서라도 네 놈이 죽는 꼴을 보고 말겠다’고 입술을 사려 물었다.

“설마라뇨. 절륜의 정력 앞에는 천하의 태왕이라도 어림없지요.”

수경은 옥문을 죄며 고상지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흘려 넣었다.

“하긴 폐하는 천하정벌에만 관심이 있으시지 밤농사에서는 별 시원찮은 것 같더라구.”

고상지는 교접 상의 말들이 광개토태왕에게 불충인 줄 알지만 내심 싫지는 않았다.

고상지는 이마와 가슴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처럼 이립한 대근과 왕방울만한 부랄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듣자하니 제가 입양한 아이 꺽감이 하령왕의 아이라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당치 않는 소리, 내가 당석에서 직접 칼로 그 애를 죽였지.”

수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어이 네 놈의 입으로 내 아이를 죽였다는 말을 듣는구나. 가여운 아가야. 어미를 용서해줘. 너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네 에미는 너를 죽인 이 원수와 교접을 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지만 기다려. 머잖아 네 생명을 앗아간 이 놈을 반드시 죽여 뼛가루를 네 무덤 앞에 뿌려주마.

 

“아, 그렇구나. 그럼, 왕비와 통정한 대가로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말은 헛소문이 맞군요.”

“가야 놈들이 그렇게 입방아를 찧어댄단 말이야?”

“함은요. 그 때문에 오히려 우리 가야인들은 도독님을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처구니가 없군. 이런 말이 태왕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나는 그날로 즉살이야. 그런 흉악한 말은 꿈속에서라도 하지 말게.”

고상지의 대근이 옥문 안에서 시르죽는 느낌이었다. 수경이 다시 요분질을 쳤다.

“알겠어요. 아,아.”

“이제부터 아무 염려 말게. 내가 자네 옥문을 지켜주는 튼튼한 방패막이가 되어 줄 테니까.”

“전 도독님만이 진정한 제 서방입니다.”

수경은 미소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긴 채 아양을 떨었다. 어라궁 침실 벽 뒤에 집사 박지가 그림자처럼 붙어 서서 엿듣고 있었다.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사국 움직임과 바다 건너 왜의 준동이 심상치 않았다. 백제는 한강 유역의 잃어버린 백제 고토를 회복하려고 가야와 손잡고 북진정책을 취했고, 고구려는 신라를 통로로 해 남진정책을 취했으므로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자웅을 겨룰 수밖에 없었다. 왜는 그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빼내고자 다대포에 있는 임나왜소를 통해 대대적인 용병 수출을 감행했다. 이에 대가야 집사 박지는 조정회의를 소집했다.

우리말 어원연구

왜소 : 임나일본부. 임나일본부는 왜가 가야를 통치한 식민정부가 아니라 가야가 왜의 무역을 허락한 왜소이다. 조선 세종 때 개항한 삼포나 조선 후기의 초량왜관과 비슷한 성격의 반자치 무역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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