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산재모병원’ 설립이 주춤거리고 있다. 주무부처가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로 오락가락하면서 자칫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불안한 소식이다. 지난 4년여동안 정부와 국회를 지난하게 설득한 결과, 규모는 대폭 줄었지만 드디어 결실을 맺을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이라는 공약을 만나면서 혼선이 발생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립산재모병원과 별개로 혁신형 공공병원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이라고도 했으나 형평성과 지역내 수요를 감안할 때 두개의 공공병원을 잇달아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병원 설립 방향이나 목적이 바뀜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거나 부처간 핑퐁게임으로 물거품이 될 것이란 우려가 없지 않았다. 공공병원 설립은 비용부담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부처나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난정부와 새정부의 ‘같은 듯 다른’ 공공병원 설립이라는 울산 공약을 두고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떠넘기려 하는 것이다. 우려가 현실이 돼서는 안된다.

울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산업도시다. 특히 대형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석유화학 중심의 국가산업단지가 2곳이나 있는 도시다. 그런데 50년이 지나도록 산재병원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국가산단에서 재해를 입은 환자는 수준이 높지 않는 지역내 민간의료시설을 찾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과 부산 등지로 옮겨가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나라 근대화를 책임져 왔던 근로자들이 기본적인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다. 산재모병원은 지난 수십년간 근로자의 희생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산재사고에 대한 최후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국립대학인 유니스트의 연구역량 극대화와 바이오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울산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명칭이 ‘산재모병원’이든 ‘혁신형 공공병원’이든 상관없다. 공공병원이 하나도 없는 도시를 탈피하면서도 단순한 종합병원이 아니라 수도권에 버금가는 높은 의료 서비스 확보와 바이오메디컬 산업 육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국립병원이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산재모병원을 계속추진하는 것이 보건복지부가 혁신형 공공병원을 새로 시작하는 것 보다 훨씬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산재모병원은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설령 혁신형 공공병원의 청사진이 산재모병원 보다 더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타당성 조사 등을 감안하면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샅샅이 살펴보아도 울산에 공공병원 설립의 가능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도 문대통령의 공약을 좇아 산재모병원을 포기하고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으로 방향을 틀려고 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성과를 통해 산재모병원 설립을 기정사실화 한 다음 차후에 여당의 프리미엄을 활용해 혁신형 공공병원의 가치를 더하면 될 일이다. 울산시민들은 한목소리로 고용노동부의 산재모병원 계속 추진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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