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울산왜성(蔚山倭城) 제6편 울산왜성의 미래

▲ 울산 중구 도심에 자리한 울산왜성(학성공원)과 주변 전경.

국제전투 현장이자 도시공원
역사 문화재로 ‘보호’하면서
도시공원으로 ‘이용’할 대상

1872년 울산부사 장변정 건립
전쟁 기억하고 후세에 전달하고자
정자 지어 풍취적 장소로 사용

도시역사공원으로 활용돼야
역사유산으로 가치 유지하면서
공공으로 활용 방안 모색해야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언급한 것처럼 울산왜성은 임진왜란(정유재란 포함) 시 동북아시아 3국(한·중·일)의 국제전투 현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현재의 울산왜성은 ‘학성공원’이라는 도시공원으로서의 성격 또한 각인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울산왜성을 바라보는 울산시민은 물론 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의 가운데에 위치한 공원이 보다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도시공원과 역사시설(문화유산, 문화재) 사이의 개념이 상호 융합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문화재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공원은 충분히 이용(활용)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상호 이분법적으로 대치해서 보는 시각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울산왜성을, 즉 학성공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문화재를 포함한 여러 역사문화유산의 보존은 동결보존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거나 또 복원하는 방향으로 검토 우위를 두어 왔다. 물론 이러한 것은 문화유산의 특징과 사실을 후세에 올바르게 전달해 주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사항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1차적인 시각적 정보를 전달받아 이해한 세대(보는 것만으로 이해한 현재 이전의 세대)에 비해 오감(五感)을 통해 종합적으로 체득하는 오늘의 세대나 앞으로의 세대에게 역사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가꾸어야한다’는 의미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까?

가치는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치의 전달하고 알리는 방법은 시대와 사회 및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울산왜성이 위치한 강변의 작은 독립 봉우리는 임진왜란 이전에 그 모양의 붓처럼 뾰족하다고 하여 필봉(筆峰)이라 하였고, 동천과 태화강이 홍수와 바닷물에 의해 범람하여 봉우리 주변을 감싸 섬(島)처럼 보인다 하여 도산(島山)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그들의 수법으로 성을 쌓은 모습을 보고 우리는 도산에 쌓은 성이라 하여 ‘도산성’이라 부르고, 그들은 울산에 쌓은 성이라 하여 ‘울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로써 도산은 조선시대 울산사람들의 풍취 대상에서부터 적의 소굴이라고 불리던 왜성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쟁이 끝난 뒤 2세대(60여 년)가 지나는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전쟁에서 희생된 그 앞의 선조들을 기억하며 도산에 제단(祭壇)과 사당(祠堂)을 조성해 역사적 장소로 기념하였고, 그 이후에는 변하지 않고 유지된 수려한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이전의 풍취적 성격을 되살리며 활용하였다. 그래서 1872년에 울산부사 이희성(李羲性)이 도산의 정상부 일원에 장변정(壯邊亭)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우리의 선조들이 울산왜성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기억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왜성과 무관한 장변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여전히 장변정과 울산왜성에 올라 지난 날의 전쟁을 기억하고 또 시와 산문을 읊었으며 끊임없이 후세에 그 사실을 전달하여 기억하게 하였다. 역사문화유산은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게 하였고, 또 다른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활용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근대기에 접어들어 울산왜성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학성공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우리의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부나마 근대기 이전에 활용되었던 공공 관람(관광)지의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공원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현재의 ‘울산왜성’ 즉 ‘학성공원’은 ‘도시역사공원’으로서의 개념 정립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있다.

도시역사공원은 역사성을 유지하되 시민들이 공공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공원 내에 활용을 위한 시설 및 인프라가 구축되고 그 주변 또한 역사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개념을 도입하여 도심이 정비될 때 그 본연의 성격이 부각된다. 이러한 사례는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다. 이창업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