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박지는 대가야 조정을 대표하는 집사 겸 이신지이고 대외적으로는 상한기였다. 그가 조정회의를 소집하자 3품 이상의 대소신료들이 어라궁 대정전에 모였다.

대가야의 금림왕과 하령왕이 제정, 보완한 관등의 품계는 모두 9품으로 나눠져 있었다. 고구려의 대대로, 백제의 좌평, 신라의 이벌찬에 해당하는 1품은 이신지, 호신지, 병신지, 법신지, 공신지 다섯 명이 있었다. 2품에서 9품까지의 내관직은 축지, 번지, 검말, 궁말, 패말, 읍차, 낙차, 소차이고 외관직 9관등은 상한기, 차한기, 한기, 주수, 거수, 인수, 대척, 중척, 소척이었다. 관료들이 입는 관복의 색깔은 3품까지 홍색, 3품에서 6품까지 청색, 7품에서 9품까지는 황색으로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오늘 조정회의는 신지, 축지, 번지 등 3품까지 홍색의 관복을 입은 관료들이 참석해 조정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조정회의를 소환한 박지 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의에 앞서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고상지 도독의 은택으로 우리 대가야는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광개토태왕이 계신 환도성을 향해 망궐례를 하겠습니다.”

대정전에 모인 대소신료들은 일제히 북의 환도성을 향해 절을 올리며 망궐례를 했다.

“호태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만수무강하소서.”

망궐례 의식이 끝난 뒤 박지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지금 나라 안팎의 정세가 고양이 눈알처럼 불안하게 돌아가고 있소. 백제 아신왕은 관미성 패전과 수곡성 패전 등 잇달아 고구려에 패배하면서 한강변의 고토를 잃고서도 어리석게도 다시 한 번 대고구려와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왜와 금관가야의 내통이오. 금관가야는 우리 대가야와 형제국이지만 항상 12개 가야연맹국의 맹주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여왔소. 이번에 금관가야의 이사품왕이 대량의 철정을 주고 왜의 용병을 산 것도 하령왕의 죽음 이후 약화된 우리 대가야를 쳐 다시 가야맹주로 복귀하려는 것, 아니겠소?”

 

박지의 말에 조정의 대소신료들이 술렁거렸다. 하령왕의 죽음 이후 한동안 평안했던 가야땅에 다시 핏빛 전운이 감돈다는 것이다.

박지의 말에 그의 심복인 호신지가 재빠르게 호응했다.

“예, 과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금관가야는 이번에 우리를 친 뒤 신라도 치려할 것입니다. 야심이 많은 이사품왕은 낙동강 동쪽의 가야 땅인 독로국과 미리미동국을 발판으로 신라의 서라벌 경주까지도 먹으려 들 것이 분명합니다.”

박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그래서 고구려 태왕께서 우리 대가야가 금관가야와 왜병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열흘마다 보고하라는 하명서를 내렸소. 이제부터 각 부별로 세작활동을 강화하고, 특히 군신지 후누 장군은 군사를 잘 조련시켜 금관가야의 침입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