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이 국가 경쟁력의 관건인 시대
수질관리 부서에 이수와 치수 떠넘기는
환경부로의 물관리 일원화 능사 아닌듯

▲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인류의 삶은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이래 늘 함께 해 온, 불 못지않게 긴요한 또 하나의 핵심 자원이 있다. 바로 물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하를 잘 다스리며 치수에 공을 세운 우(禹)가 결국 천자의 자리에 올라 요순시대를 이어갔다. 치수가 국가 경영의 전부와 다름없었던 셈이다. 그만큼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 내내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였으며, 그로부터 수없이 많은 경험과 지혜가 켜켜이 쌓여왔다.

물을 다루는 일은 이수(利水)와 치수(治水)로 크게 구별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이바지하도록 물을 활용하는 것이 이수라면, 물로 인한 재난을 예방하여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대비해나가는 것이 치수의 요체이다. 둘 모두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오늘날에는 이수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1인당 연간 물 사용 가능량이 1500㎥에 못 미쳐 물 부족국가에 해당하는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번 살펴보자. 도시화가 진전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생활용수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주택단지를 조성하든, 신시가지를 개발하든, 국토균형개발을 모색하든, 물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경제활동에 필요한 산업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절실한 과제이다. 요컨대 인위적으로 물을 확보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미리미리 강구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삶을 꾸려갈 수 없는 세상이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물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그만큼 물 문제가 절박하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예컨대 갠지스강 하류의 델타지역에 위치한 방글라데시는 인도가 중상류지역의 물을 마구 끌어다 쓰고 홍수기에는 또 대책없이 방류해버리는 바람에 늘 물 부족과 물난리를 반복해서 겪고 있다. 물 문제가 방글라데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인류 고대문명의 터전이었던 황하는 오늘날 메마른 강으로 변해가고 있다. 중상류지역의 도시들이 무분별하게 물을 끌어다 쓰는 바람에 하류로 갈수록 수량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날 정도이다. 급기야 대륙의 남북을 가로질러 장강의 물을 황하로 끌어올리는 대역사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남수북조(南水北調)사업이다.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경계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타이푸 댐은 수원(水源) 관리와 생산된 전력의 배분 문제를 두고 늘 두 나라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바야흐로 수자원이 국가 존립과 경쟁력 유지의 관건이 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런 문명사적인 흐름에 비추어보면 새 정부가 물 관리를 환경부로 일원화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현명한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장기적인 수자원 조달을 염두에 두면서 국가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곳에는 정작 아무런 수단도 남겨두지 않은 채, 수질을 개선하고 오염을 규제하는 곳에 이수와 치수의 부담까지 떠안기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제대로 국가경영이 이루어지려면 정부 부처간에도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작동하여야 한다. 일원화가 능사는 아니다.

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진중하고도 사려 깊은 판단을 요하는 사안이다. 시행착오로 인해 물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온전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국회에서 더 논의하여 결론을 내기로 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디 선입견 내려놓고 진지하게 토론하여 바른 길을 찾아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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