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문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 뜨거운 여름, 핫 아이템 중 하나를 꼽자면 휴대용 선풍기가 아닐까. 올 오월이 지나면서부터 아이들의 책상 위엔 하나둘씩 이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실 양쪽 벽에 하나씩 붙어있는 선풍기로는 교실 앞뒤는 물론이고, 중앙 자리까지도 바람이 닿지 않으니 아이들이 거금을 들여 마련을 한 모양이었다. ‘오죽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휴대용 선풍기를 켠 대부분의 아이들이 눈앞의 선풍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친구들과 선풍기 바람을 공유하느라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해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 한 점 오지 않는 교탁 앞, 내 등줄기에서는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아이들은 턱을 괴고 선풍기 바람을 쐬는 것이 얄미워서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다.
‘작년 이맘때는 각양각색의 부채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의 많았는데….’ 이상하게 똑같은 모양의 선풍기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캐릭터와 색깔, 재미있는 문구를 넣은 제각각의 부채를 들고 있는 아이들은 빛나 보였다. 저들끼리 가위바위보 해서 부채질을 해주는 모습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다 수업이 끝나고 교탁 앞에 나와 “선생님 더우시죠?”하며 나에게 부채질 해주는 아이가 있으면, 나는 꽤나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은 것처럼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아이를 말리곤 했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더 호사스럽고 시원한 부채 바람을 알고 있다. 이 부채로 말할 것 같으면 굳이 손을 움직여 바람을 일으키지 않아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부채를 봄과 동시에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마음은 따뜻해진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며, 한번 부채를 손에 쥔 이상 부채 살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버릴 수 없을 정도로 귀하게 여기게 된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지면으로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나와 우리 반 아이들, 그리고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다. 바로 ‘칭찬 부채’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칭찬이 적힌 부채이다. 대나무 부챗살 사이사이마다 그 사람의 장점이 적힌 부채가 펼쳐짐과 동시에 그 주인의 얼굴도 함께 펴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생각해 보라. 대오리 하나가 보일 때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칭찬과 장점 30가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칭찬 부채 만들기’를 한 날 아이들은 좀 더 자주 웃고 서로에게 다정했다. 학년 말이 되어서도 지난여름의 특별한 부채를 잊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위해 항상 노력하신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신다. 언제나 활동적이고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신다. 수업 시간이 재밌고 반어법 활용을 잘 하신다. 잘 챙겨주시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다.’ 부끄럽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적어준 칭찬 부채의 내용이다. 칭찬부채를 볼 때마다 어느새 더위는 싹 가시고 저 깊은 곳에서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이 더위가 물러가기 전에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칭찬 부채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김미성 구영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