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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영환의 건축과 문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13)]불탑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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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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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 받지 못한다고 했던가. 예수의 가르침도 유대 땅에서는 박해를 당하고 오히려 로마에서 꽃을 피워 온 세계로 전파되었다. 공자도 고향인 노나라에서는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도 자신의 고향인 메카에서 쫓겨나 메디나에서 교단의 기초를 세웠다. 종교에 있어서도 ‘진짜 원조’는 성자의 탄생지가 아니라 그의 뜻을 이어가고 발전시킨 곳이다.

불교 또한 그러하다. 인도에서 고대 불교문명의 기원을 찾으려는 사람은 대단히 실망할 것이다. 거기에는 석가모니의 활동과 관련한 ‘장소’가 남아있을 뿐 거창한 건축물들은 대개 힌두교나 이슬람 사원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명맥이 끊어진 것도 이미 12세기 이전의 일이지만 힌두와 이슬람의 주류신앙 속에서 고대 불교유적은 온전히 보전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원조로서의 명성은 오히려 스리랑카에서 이어가게 된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불교를 인도의 아쇼카 왕이 그의 아들 마힌다 왕자를 파견함으로써 전수되었다. 마힌다는 상좌부 불교의 장로였는데, 당시 스리랑카의 왕은 그에게 감화되어 바로 불교에 귀의했고, 그를 위해 큰 절(大寺)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훗날 이 절은 대사파의 기원이 되어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었다. 남방 상좌부 불교의 기원이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스리랑카는 인도에서 버림받은 불교문화를 굳건히 지키며, 크게 발전시키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전파하는 원조가 된 것이다.

초기 불교사원의 모습은 스리랑카의 고대도시인 아누라다푸라에서 나타난다. 불교를 전수받았던 싱할리 왕조는 그들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를 불국토의 이념을 닮은 신성도시로 건설했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스투파(stupa)를 세웠다. 그것은 거대한 무덤의 모습이었다. 높이가 50~100m에 이르는 거대한 스투파들이 마치 왕릉을 품고 있는 신라의 경주를 연상케 한다.

   
▲ 아누라다푸라의 분묘형 스투파. 높이가 50~100m에 이르는 거대한 스투파들이 마치 왕릉을 품고 있는 신라의 경주를 연상케 한다.

이 반구형 스투파는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 왕이 조성한 산치의 스투파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분배하여 전국 각지에 스투파를 조성했던 인물이다. 석가모니가 입적한 후 500년간은 아직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이었으니 그때까지는 사리가 신앙과 예배의 주 대상이었고, 사리를 봉안한 스투파는 그 자체로 사원의 중심이었다.

남방 상좌부 불교의 기원이 된
스리랑카엔 거대한 스투파 즐비
왕릉 품은 신라의 경주 연상케 해
아시아 여러나라로 전파된 스투파는
다양한 명칭과 함께 여러형태로 발전
초기 중국의 누각식 목탑서 출발한
한국은 목탑서 석탑으로 대체되면서
탑 형식의 놀라운 발전 이뤄내
통도사 금강계단은 스투파의 정점

아누라다푸라의 분묘형 스투파는 나를 초기 불교도시의 상상으로 인도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 가장 높다는 것, 가장 크다는 것 등 특징적인 것만 구경해도 지치게 마련이다. 모든 스투파들은 성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반드시 맨발, 탈모로 참배해야한 한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돌바닥을 토끼뜀으로 돌아본다. 지금도 이 나라에서 스투파는 존엄한 숭배의 대상이다.

스투파는 불교신앙과 함께 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전파된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를 다고바(dagoba)라고 부르는데, 미얀마나 태국에서는 파고다(pagoda), 중국에서는 탑파(塔婆)가 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진다. 우리가 흔히 불탑, 탑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다.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만큼 그 형태도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무덤형식의 스투파로부터, 종모양의 파고다, 다섯 가지 형을 쌓아올린 라마탑, 그리고 누각형식의 중국 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탑조형이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불탑 조형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동남아 국가들의 어마무시하고, 비까번쩍한 황금 탑을 구경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돌탑이 초라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크고 번쩍인다고 해서 예술적이거나 종교적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석탑은 중국,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창적 예술품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우리도 초기에는 중국의 누각식 목탑 조형을 전수받아 거대한 목탑을 답습했다. 그러나 이것이 석탑으로 대체되면서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졌다. 목조건축물을 모방했던 석탑의 조형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돌의 물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물구조와 같은 장식들이 과감하게 생략되고, 육중한 매스의 입체감과 중량감으로 ‘돌탑다움’을 창출했다. 바로 다보탑에서 석가탑으로의 전환이었다.

통일신라 시기가 지나면서 탑의 규모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스투파가 아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지 않아도, 기가 질릴 정도로 크지 않아도,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불전 앞마당을 가득 채우는 오브제가 되었다. 그 무표정함은 번잡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기에 포용력과 지속력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은 우리나라 스투파의 정점이다. 그토록 작고 단순한 사리탑으로 이토록 깊은 신앙적 경외심을 자아낼 수 있을까? 수리 수리 마하수리!(빛나도다! 빛나도다! 거룩히 빛나시도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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