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대가야를 떠나기 전날 꺽감은 어리지만 자신의 운명의 축이 다시 한 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가야의 밤이 깊었다. 뒷산의 부엉이도 울다간 끝에 새벽 박명이 까만 어둠의 천을 한 꺼풀 벗겨냈다. 양아버지 후누는 안고 자던 꺽감을 깨워 저택의 방 한 칸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철갑옷과 철투구, 환두보검이 걸려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후누는 꺽감에게 말했다.

“꺽감아,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가야의 병사들이 입는 철갑옷과 투구, 칼입니다.”

“맞아. 그런데 이 철갑옷과 칼은 특별하단다.”

후누는 갑옷 미늘과 보검 장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령 선대왕께서 쓰시던 것이지. 나는 이 옷을 입은 선왕과 함께 가야 철기군을 이끌고 열두 가야를 평정하고 고구려와 싸워 이기기도 했지.”

“지금은 우리 대가야가 고구려의 땅이지요.”

“고구려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대가야 땅이란다. 너는 이제 적국 고구려로 간다. 그곳에서 가서도 대가야인의 기상을 잃지 말아라.”

“예, 아버지.”

“이 철갑옷을 입고 대가야의 융성을 꿈꾸었던 하령대왕을 생각하며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 하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꺽감은 후누에게 절을 했다.

후누는 꺽감의 절을 받으며 오히려 마음속으로 큰 절을 올렸다.

 

‘꺽감 왕자님, 제 아들의 목숨과 바꾼 것을 아십니까? 가야의 흥망이 오로지 왕자님께 달려 있습니다. 부디 대어가 되어 낙동강 모천으로 돌아오십시오.’

다음날 아침 고상지 도독과 수경은 꺽감을 데리고 대가야 어라성을 나와 고구려 국내성으로 향했다. 대가야에서 고구려로 가는 길은 해로와 육로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해로는 대가야에서 회천과 낙동강 수로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 금관가야에서 남해안과 서해안의 연안해로를 따라 압록강의 국내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육로는 금산재를 넘어 성산가야와 달구벌을 지나 국원으로 가서 아리수를 건너 고구려 국도를 타고 들어가는 길이다.

말타기에 익숙한 고상지는 주로 육로를 이용해 국내성에 들어갔으나 이번에는 해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말을 달리는 육로는 빠르지만 몸이 피곤했다. 하지만 해로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물화를 실을 수 있었다. 특히 가야배는 흘수가 깊은 평저선이라 안전하고, 좌우의 노가 일본과 중국 배보다 두 배가 많아 속도가 빨라 좋았다. 무엇보다도 수백 년 동안 해상강국이었던 가야에는 노련한 뱃사공과 방향을 잡는 조타수가 많았다.

배는 대가야의 회천나루를 떠나 낙동강 칠백 리 물길을 따라 금관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상지는 용선 선실 안의 호화로운 침대에 앉아 수경에게 말했다.

우리말 어원연구

까마. [S]kama(카마), ①dark, black(검은). ②compare(비교하다), 이 카마(경상도사투리, 이것과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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