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회야댐 생태습지

▲ 회야댐 생태습지는 2003년부터 2009년에 걸쳐 회야댐 상류에 조성된 것으로 5만㎡에는 연꽃, 12만3000㎡에는 부들·갈대 등이 심어져있다. 1년 중 딱 한 달만 개방, 원시적 자연상태가 유지돼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경상일보 자료사진

일년중 딱 한달만 개방
원시 생태길 4㎞ 걸으며
더위 식히고 건강도 챙겨
회야강과 어우러진 습지
시원한 경관 제공하고
물 정화하는 효과도
이주민들이 내어준 땅에서
우리시민의 식수 생산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

올해 여름은 일찌감치 더위가 시작되어 폭염특보를 쏟아내며 쉬이 물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울산은 극심한 가뭄까지 겹쳤으니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더위가 두렵다고 집안에 있어봤자 에어컨과 TV만 몸살 나게 할 뿐 무기력해지기 일쑤다. 노약자들의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는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다면 이열치열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집을 나서기로 했다.

매스컴에서 연일 소개된 회야댐 생태습지탐방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1년 중 딱 한 달만 하는 행사로 올해로 4년째라고 한다. 습지를 덮고 있는 싱싱한 연잎들만 보아도 더위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데다 4㎞를 걷는다니 건강도 챙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서둘러 전화로 참가신청을 했다. 당분간 자리가 없다고 하면서도 두 명이어서 이틀 후로 예약을 해주었다.

탐방은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시작되고 2시간 쯤 걸린다. 집결지는 댐 상류에 있는 통천초소이다. 시내에서는 온양 방향으로 가면 되지만, 무거동에 사는 우리는 웅촌 쪽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 망향동산의 망향비

60년대까지 만해도 약수로 유명했던 초천마을에서 좌회전한 후 회야강을 따라 내려가니 석천마을이 나타났다. 학성이씨 근재공 고택과 석계서원이 있는 석천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울산의 최고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근래에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오는 외지인이 늘고 있다. 울산에 큰 영향을 남긴 우석 이후락의 생가와 별장도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소유주가 바뀌었다니 권력이 무상함을 느낀다.

석천마을을 지나 댐이 시작되고 곧이어 집결지에 닿았다. 상수원보호를 위해 1회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하는데 오늘은 60명이란다. 울산은 물론 부산 등지에서도 참가 신청자가 많은 점을 배려한 모양이다. 예상 밖으로 어린이 두세 명을 빼고는 모두 성인이어서 깜짝 놀랐다. 6개월 된 아기가 최연소 탐방자라면 우리는 최연로였다. 이 나이에 학습하는 장소치고 어디 간들 최고령자가 아니랴. 그래도 젊은이들 속에 섞일 수 있어서 부끄럽기 보다는 젊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리플릿, 연잎차와 부채를 선물로 받고 생태습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30명씩 2팀으로 나누고 팀당 생태해설사 1명과 안전요원 1명이 배정되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길이다 보니 멧돼지, 고라니, 뱀들이 출몰하기도 해서 꼭 안전요원이 필요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길바닥에는 고라니가 방금 싼 것 같은 동글동글하고 윤기가 나는 까만 똥이 정말 많았다.

▲ 통천초소 옆에 있는 애향비.

습지로 가는 길의 중간 쉼터에 통천마을 서당으로 쓰였던 자암서원이 쓸쓸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퇴락되어가는 서원의 모습이 애처롭다.

숲길을 걸으며 식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마침 생태해설사가 아는 사람이라 무척 반가웠다. 왕죽과 맹종죽의 차이, 오배자가 달리는 붉나무에 등 여러 가지 나무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위질빵’이라는 덩굴식물 이름의 유래가 탐방객들을 웃겼다. 장모가 약한 덩굴로 질빵을 만들어 사위가 짐을 적게 지게 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사위가 처갓집 것을 많이 지고 갈 수 없게 했다는 것이 유래라고도 한다. ‘사위는 장모 사랑’이라는 말과 ‘딸은 예쁜 도둑’이라는 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명이 아닐 수 없다.

40분 쯤 지나서 생태습지 전망대에 다다랐다. 이 습지는 2003년부터 2009년에 걸쳐 회야댐 상류에 조성된 것으로 5만㎡에는 연꽃, 12만3000㎡에는 부들·갈대 등이 심어져있다. 회야댐은 1986년에 회야강 중류에 건설되었으며 만수위 저수량은 울산 시민이 110일간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올 여름은 저수량이 모자라 낙동강 물을 사서 먹는다니 가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회야강은 양산의 천성산 무지개폭포에서 발원되어 웅촌, 청량, 온산을 거쳐 동해로 흐르는 길이 43.5㎞인 강이다.

휘돌아 굽이를 이루는 회야강과 어우러진 습지는 시원한 경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 과정으로 물을 정화하는 효과도 내고 있다. 습지를 거치는 물은 연, 갈대, 부들 등의 수생식물로 인해 흐름이 느려져서 각종 오염물질이 침전된다. 식물의 줄기와 뿌리는 오염물질을 영양분으로 흡수하고 각종 미생물이 오염물질을 흡착, 분해하여 수질을 좋게 해준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제공하는 차가운 연근차로 더위를 식히고 습지 탐방로에 들어섰다. 갈대와 부들 등 수생식물을 건성으로 보던 탐방객들이 연잎들이 짙은 녹색으로 습지를 넓게 덮은 장관 앞에서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 이선옥 수필가· 전 문화관광해설사

연잎 가운데에 모여 있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따라내고는 물이 묻은 흔적이 없음을 보고 젊은이들이 신기해한다. 이런 정갈함으로 순수와 순결이라는 꽃 말을 얻었는지 모른다, 한 이파리 꺾어 햇빛을 가리다가 비 오는 날 우산으로 쓰고 싶은 동심이 생겨났다. 넓은 연잎 사이로 연꽃이 수줍은 연분홍 얼굴을 내밀고 맑게 웃는 모습이 나를 홀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습지 면적이나 조성 과정을 들은들 무엇 하랴.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는 것이 더 멋진 체험이 아닐까. 청정해진 심신은 더 머무르길 원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처음 출발지로 돌아왔다.

탐방은 끝났지만 따로 댐의 둑 근처에 있는 망향동산에 갔다. 수몰된 중리, 신전, 신리, 통천 마을 150여 가구 이주민을 위로하기 위해 2001년에 건립된 망향비가 댐을 배경으로 쓸쓸히 서 있다. 통천초소 옆에는 통천마을 이주민들의 애향비도 있다.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소중한 것들이 많지만 실향의 슬픔만한 것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들이 아픔으로 내어준 땅에서 우리 시민의 식수가 생산된다니 고맙고도 미안하다.

이선옥 수필가· 전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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