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논란이나
구한말 외국인에 비친 군역문란이나
국가자산을 사적 소유물화한 폐단
이참에 징병제도의 변화도 시도해볼만

▲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 내과전문의

<조선, 1894년 여름>이라는 책을 읽었다. 헤세 바르텍이라는 오스트리아인이 조선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이다. 그는 조선의 군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나라에서 조선의 군대는 가장 기이한 군대로 보인다. 조선 정부의 공식 문서에는 군대의 인원이 120만이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 어디에도 조선 병사는 한 명도 없다. 수도와 왕궁의 감시는 일본 군대가 맡고 있고, 왕과 정부는 일본인들의 포로다. 도대체 120만 명의 군대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사지가 건강한 모든 남자는 양반 계급에 속하지 않는 한 군인의 의무를 지며, 군인으로 등록된다. 군인 중 99퍼센트가 무기를 잡아본 적이 없으며, 군복을 입어본 일도 없다. 조선의 관리와 장교들은 뇌물을 받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병사 명부를 작성하는 일은 아주 수지가 좋은 장사이다. 명부 작성을 위해 매년 도시와 마을을 순시할 때, 얼마를 주면 이 명부에서 제외될 수 있는지가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보통 3000에서 5000 냥 정도이다. 쏠쏠히 재미를 본 하급 관리는 대신 명부에 있지도 않은 이름을 올린다. 몇 세대 전에 죽은 가족의 이름까지 올라가게 된다. 지배계급은 군역을 면제받고 피지배계급만 져야하는 조선이란 나라가 오백년이나 지속된 것도 기적이다.”

어제 젊은 후배들과 술을 마시면서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가 외면당하고 있다. 최근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으로 군 서열 3위인 육군 대장이 군 검찰에 출석했다. 부인도 공관병에게 빨래, 청소 등의 잡일을 시키고 폭언을 일삼고 베란다에 가두거나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자 팔찌도 채웠다고 한다. 부인은 “아들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필자가 군대 갔을 때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군복 입은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려 했다고 한다. 우연히 필자가 소속돼 있던 사단의 마크만 발견해도, 마치 필자를 만난 듯 그 군인을 바라보곤 했다. 장성한 아들을 둔 필자도 어머니의 경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직업군인이 아니라 의무 복무병이라 해도 그를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위계 사회는, 서열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이러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용인하는 듯하다. 권력에 의해 수시로 발생되는 권한 남용들은 종종 ‘아들 같아서 혹은 딸 같아서’ 아니면 ‘손녀 같아서’라는 징그러운 변명들을 매달고 있다. ‘네 아들이었으면, 네 딸이었으면 정말 그렇게 했겠느냐?’고 묻고 싶다.

군인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다. 사성장군, 혹은 그 부인이라 해 사적 소유물처럼 다루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다. 폭탄 투하로 민간인 6만6000명이 죽었다. 나중에 피폭 여파로 죽은 사람까지 합하면 20만 명에 이른다. 그 이후 전통적인 의미의 군인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트루먼은 여러 참모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 해군 참모총장은 “자신은 여자와 아이들을 무작위로 죽이면서까지 전쟁을 하라고 배우지 않았다”고 반대했다. 원폭 투하 이전에 21년 간격으로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늘까지 72년간 세계 강대국들끼리의 전쟁은 없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의 대량 살상이 핵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흐루쇼프가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 했을 때 케네디가 핵전쟁도 불사한다고 강경하게 반대하자 기지 건설을 포기했다. 핵무기로 인해 세계가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강대국들은 이미 인류를 몇 번이나 죽이고 남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핵무기의 사용은 인류 멸망임을 알기에 역설적으로 세계전쟁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는 현재 자신들의 체제 유지가 힘들기 때문이다. 핵보유 말고는 체제 보장의 방법이 없다는 믿음이다. 핵무기 시대에는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군인과 죽어갈 수백만 명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대규모 군인은 필요 없다. 징병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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