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수경부인, 당신은 미인에다 현명한 여자야.”

도독의 말에도 수경은 말없이 선창으로 지나가는 낙동강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야흐로 배는 낙동강 물줄기를 타고 내려와 하류 삼각지인 금관항을 지나고 있었다. 해는 서산에 머물다 지는 순간이어서 낙동강 물결은 온통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숲은 수묵화처럼 그윽했고, 삼각주 갈대밭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상지는 수경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박지 아들이 물먹은 꼴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하군.”

“칠뜨기 같은 박지 아들 구야를 거련 왕자의 동무로 데리고 가면 가야의 망신이에요.”

수경은 어라궁에서 고상지와 동침할 때 귓속말로 박지가 바깥에서 엿듣고 있으며, 박지가 수경에게 꺽감 대신 구야를 고구려에 보내게 하라고 협박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고상지는 일부러 구야를 고구려에 보내는 척 박지에게 흘린 뒤 조정회의에서 박지의 뜻을 꺾고 꺽감을 고구려로 보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고상지의 손은 수경의 머릿결에서 젖가슴으로 내려왔다. 퉁글은 고상지의 손에 잡히는 수경의 몽실한 유방은 무르익어 터질듯했다. 풀어헤친 옷이 뱀의 허물처럼 스스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몸 선은 젖무덤에서 봉긋해지다 허리에서 개미처럼 가늘어지고 엉덩이에서 풍만한 언덕을 만든 뒤 허연 허벅지와 종아리에서 길고 매끈하게 빠져 음률이 흐르는 듯했다.

고상지는 그녀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수경은 칼을 잡아 굳은살이 박힌 그의 손바닥이 지나갈 때마다 소름이 잘게 돋았다. 고상지의 근이 몸으로 들어올 때마다 칼로 내 아이를 벤 책임을 네 놈에게 반드시 묻겠다며 뼈아프게 확인을 하고 또 했다.

용선의 이물에는 거대한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고물에는 네 날개의 바람개비 문양이 장식되어 있었다. 용선은 순풍을 만나 강에서 바다로 미끄러져갔다. 고상지는 배가 정박할 때마다 금관가야와 포상팔국에 풀어놓은 세작들로부터 첩보를 수집했다. 용선은 연안해로를 타고 북상하여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국내성 나루에 도착했다. 가야에서 온 일행들은 고구려의 왕궁인 북쪽 환도성으로 들어갔다.

광개토태왕은 북방영토에 순수하러 가서 없고 대신 장화황후가 환도성 내정에서 가야에서 온 일행을 맞아주었다.

 

내정에 있는 장추전 보좌에 앉은 장화황후는 아름다움보다 위엄이 승한 여인이었다. 여자로서는 큰 키에 엄한 눈매와 날카로운 콧날, 일매진 입술이 범접할 수 없는 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얹은머리에 이글거리는 불꽃형 금관식을 꽂고, 날아가는 용무늬의 자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요령을 매단 금구혁대를 하고 있었다.

고상지와 수경, 꺽감은 보좌에 앉은 장화황후에게 절을 하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리띠에 매달린 요령들이 딸랑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장화왕후는 고상지와 수경이 데리고 온 꺽감을 보고 말했다.

“이 아이가 건강하고 총명하다는 가야 아이 꺽감인가?”

우리말 어원연구
포상팔국: 전기가야 때 낙동강 하류와 경남의 남해안 일대에 있었던 8개의 소국으로 골포국, 칠포국, 고사포국, 사물국, 고자국, 보라국 등이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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