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일본 유학시절 같은 동양회화의 맥락인 일본채색화를 공부했다. 한국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이유가 정체성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화가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었는데, 토속적인 소재를 차용하면 진부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 한국화가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업에 몰두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나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울산으로 돌아와 만난 박소현 작가 또한 10대 중반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20대 중반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한국인이 아닌 이방인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불편한 생각을 ‘음식’이란 소재와 버무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고 작가는 낯선 곳에 적응할 때마다 그 나라 음식문화를 통해 그 장소와 사람들을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박 작가는 목탄으로 작업한 거대한 음식드로잉작품을 선보인 후 전국 여러지역의 레지던시를 다녔다. 작업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은 이전 작품이 좋고 나쁨을 떠나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질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박 작가의 변화된 연필 드로잉 추상작업은 한국제사의 진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마지막 만찬’의 두 번째 프로젝트이다.

▲ 박소현 ‘0’ 종이에 연필 각 29.7x21.0cm, 2017

그녀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그의 부재에서 느낀 공허함을 종이라는 여백에서 그리고 지우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채우고 비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목탄에서 연필로의 재료의 전환은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며, 늘 색이 없는 흑백을 고집하는 것은 이미지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기 위함이다. 박작가는 고향으로 처음 돌아왔을 때 자신이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점점 자신의 색채가 또렷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박 작가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오는 9월9일부터 9월17일까지 신화마을에서 진행되는 ‘지붕없는 미술관展’에서 만날 수 있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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