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꺽감이 여옥을 빤히 보며 말했다.

“예, 수경부인이 제 어머니이십니다.”

“네 아버지는 누구시니?”

“후, 누, 장군이십니다.”

또박또박한 꺽감의 대답을 듣는 순간 여옥의 눈가에 이슬이 번졌다.

‘아, 꿈에도 그리던 내 아이가 맞구나.’

수경아, 꺽감의 생명을 구해주고 지켜주어 고맙다. 그런데 너는 네 아들을 칼로 죽인 원수 고상지와 함께 내정 장추전에 서 있구나.

나 또한 남편과 척족을 죽이고 아이를 죽이도록 명령한 태왕과 한 이불에 발 넣고 자고 있으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착근을 하고 줄기와 가지를 올리듯 꺽감도 척박한 땅에서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구나. 천길 낭떠러지 벼랑 끝 바위에도 희망의 나무는 자라는 것이다.

 

꺽감아, 별이 길 없는 하늘에서도 소리없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너도 머나먼 하늘을 둘러 둘러 모자의 별자리를 찾아왔으니 이제 헤어지지 말고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자자.

장화황후가 고상지에게 물었다.

“고장군, 이 아이는 누가 맡아 키워야 하는가?”

“소인의 생각에는 소후마마가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평소 자신이 대가야의 후견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고상지로서는 꺽감이 가야왕비이자 소후인 여옥의 밑에서 크는 것이 좋은 환경에서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무엇이, 이 아이를 여옥에게 맡긴다고? 너는 무슨 꿍꿍이로 아이를 어미 수경부인과 떼어 놓으려 하느냐.”

황후의 목소리가 비토라졌다.

소후 여옥은 광개토태왕의 총애를 독차지 해 황후와 궁녀들의 질시의 대상이었다. 황후는 자신이 총애를 입지 못할망정 여옥만은 안 된다고 생각해 태왕의 침전에 다른 미색과 색향들을 들여 넣기도 했으나 태왕은 한결같이 소후궁으로 밤 발걸음을 옮겼다. 왕의 총애를 여옥에게 빼앗긴 마당에 이런 준수한 가야아이를 여옥에게 맡겨 거련과 자식 경쟁까지 벌인다면 장화황후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전 단지 가야왕비 소후가 잘, 아니 마마의 말씀대로 아이의 어머니인 수경부인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황한 고상지는 말을 얼버무리다 장화황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암, 아이는 당연히 어미가 키워야지. 꺽감은 수경의 양육 하에 각나라에서 온 볼모들과 함께 숙위궁에서 생활하고, 때가 되면 동궁에서 태자 거련과 함께 수학하라.”

장화왕후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들 ‘예’하고 읍한 뒤 물러났다.

소후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으며 꺽감을 보고 또 보며 소후전으로 물러났다.

우리말 어원연구

묻다, 물어보다. 【S】murva(무러바), bite, grip. 물어보다, 질문하다는 ‘물어뜯다’가 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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