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꺽감은 숙위궁에서 수경과 함께 생활했다. 고구려의 속국과 신국에서 올라온 왕자와 볼모들이 고구려 숙위궁에 머물면서 황제를 호위하는 의장대에 편입되어 있었다. 숙위궁에는 신라의 내물마립간의 아우인 실성왕자, 백제 아신왕의 딸인 다해공주, 왜왕의 아들, 후연 모용성의 아들, 말갈, 거란, 숙신, 부여, 중국 북위의 자제들이 모여 질자로서 생활하고 있었다.

꺽감은 고구려의 마방에 배정되어 말구종이 되었다. 말구종은 미천한 직이긴 하지만 말을 중시하는 고구려에서는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광개토태왕은 명절 때마다 말을 검열하였고, 검열 때는 태왕과 태자, 후비빈들도 함께 찾아와 말을 구경했다. 꺽감은 왕족이 타는 말들이 탈이 없나 잘 살피고 조련하는 일을 하면서 신중함과 통솔력, 용맹무쌍함과 때를 알아차리는 분별력을 쌓아갔다.

숙위궁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태자 거련이 여동생인 상희와 함께 숙위궁에 행차한다는 것이다. 숙위들이 부지런히 궁을 청소하고 의관을 갖추었다.

태자가 좌우에 호위무를 거느리고 상희와 함께 숙위궁을 찾아왔다. 숙위들은 태자와 공주에게 예를 갖추고 정중히 맞아들였다. 체소한 거련은 얼굴이 희고 창백했으며 몸은 마르고 병약해보였다. 그의 용모나 걸음걸이 어디에도 광개토태왕의 적자로서의 위엄과 후광이 보이지 않았으나 눈만은 총명하게 빛났다. 거련은 무골이 아니라 문약해 보였다.

거련이 마방으로 와 꺽감을 찾았다.

“얼마 전 가야에서 온 장군의 아들 꺽감이군.”

“그렇습니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로부터 좋은 동무가 왔다고 말을 많이 들었네.”

“태자마마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꺽감, 우리 오늘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놀러가 볼까?”

“고맙습니다, 태자마마.”

 

셋은 말을 타고 환도성 밖 주작대로를 달려 국내성 저잣거리로 향했다. 상희공주는 준수한 꺽감에게 끌려 시종일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국내성에는 고구려의 축제인 동맹이 시작되고 있었다. 떡방앗간, 푸줏간, 과일가게, 대장간, 옷가게, 신발가게, 그릇가게에는 장사치들과 붐비는 인파들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씨름판에서는 황소를 걸고 씨름이 벌어지고 있었고, 검술경연장에는 챙챙거리는 칼소리가 들렸다.

거련이 씨름판에서 하마해 꺽감에게 말했다.

“꺽감, 우리도 여기서 한 판 놀아보자.”

“좋습니다.”

둘은 웃통을 벗고 씨름을 했다. 힘과 기술에서 거련은 꺽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꺽감의 호미걸이에 거련은 뒤로 나가떨어져 엉덩방아를 찍었다. 검술 경연장에서는 둘이 목검을 들고 칼싸움을 했다. 몇 합을 겨루지 않아 거련의 칼이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어린 거련과 꺽감은 승부에 관계없이 마냥 즐거웠다. 상희는 좋아라고 깔깔거리며 박수를 쳤다. 멀찍이 따라가며 지켜보던 장화황후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쩍였다.

우리말 어원연구

살피다. 【S】sarpi(사르피), sripita(스리피타), look into, ob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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