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울산을 방문한 신임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은 산재모병원 건립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혁신형 공공병원 건립’이 문재인 대통령의 울산공약으로 채택되면서 노동부가 산재모병원 건립에서 손을 뗀 것이 분명한 모양이다. 4년여 검토 끝에 겨우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국책사업이 일거에 날아가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여간 아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대통령의 답변이 필요한 시점이다.

울산 산재병원 건립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처음 검토된데 이어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잇달아 공약사업을 내걸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산업도시인 울산에 국립산재병원이 없다는 것이 누가 봐도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다. 예타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의 정책적 의의와 경제성을 판단하고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다. 취지는 좋으나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평가방식 탓에 지방도시의 국립 문화·복지시설 건립은 번번이 예타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산재모병원도 예타 때문에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4년여 세월을 허비하다가 정권교체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울산시민들이 고대하던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이하 박물관)도 결국 예타가 걸림돌이 됐다. 시민들의 염원을 모아 어렵게 울산에 유치했던 박물관 건립은 정부 부처의 비협조적 태도 속에 차일피일하다가 결국 예타를 핑계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3차례에 걸친 대대적 규모 축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타는 편익항목 산정에 CVM(Contingent Valuation Method 조건부가치측정법) 방식의 설문조사를 사용해 경제성이 없다고 하고, 울산이 부자도시라서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도 필요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울산은 문화·복지 수준이 전국 꼴찌에 가깝다. 그런데도 단지 1인당지역내총생산이 높다는 이유로 단 하나의 국립 문화·복지시설도 갖지 못하는 형편인 것이다. 문화와 복지를 뒤로 밀쳐두고 오로지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공해 속에서 헌신한 결과가 ‘부자도시라서 국립 문화·복지시설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의 예타제도가 유지되는 한 울산은 앞으로도 어떠한 국립시설도 유치할 수가 없다. 모든 문화·복지시설을 수도권에 짓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예타 제도 개선을 통해 국립산재모병원과 국립산업기술박물관 건립을 당초 계획대로 재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문재인 정부가 아닌가. 예타방식을 바꾸거나 예타 면제제도를 확대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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