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울산왜성(蔚山倭城) 제7편 울산왜성의 활용

▲ 일제강점기 울산왜성 원경.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왜성, 기억해야 할 문화재로
후손들에게 교훈 전해
다양한 문화콘텐츠·이야기 간직
울산왜성 정비·활용의 이유
도심속 숲, 거점공원의 기능
생태도시 분위기에도 일조
국제전 벌어졌던 최대 전적지
3국의 개념 담은 거리 조성되면

역사적 가치 부각될것

우리나라 동남해안의 곳곳에 남아있는 왜성 중 상당수가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울산왜성처럼 도심에 위치해 있는 경우는 부산의 자성대(子城臺, 일명 고니시성(小西城)·마루야마성(丸山城)이라고도 함) 등 몇몇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쌓은 일본성, 즉 왜성은 해안 인근의 독립 구릉(독립 봉우리)을 이용해서 쌓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주변을 살피기에 매우 좋다. 이를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그곳은 뛰어난 전망대라는 말도 된다.

현재 울산왜성의 주변은 조선시대나 근대기에 비해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고층의 건물이 들어서고 숲이 울창하다. 울산왜성에 올라 주변을 관람하는 기능은 여전하지만, 볼 수 있는 범위는 지나치게 협소해졌다. 즉 왜성에 올라 멀리 내다보는 역사성은 여전하지만, 그 방법만은 오늘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울산왜성은 동북아 3국의 국제전이 벌어졌던 임진왜란 관련 국내 최대 전적지이기 때문에 이 역시 도시역사공원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한·중·일의 관련 시설이 없는 한 울산왜성은 오감으로 전적지로서의 느낌을 받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3국의 문화성을 반영한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 및 실행하거나 3국의 개념을 담은 거리(街)가 만들어진다면, 울산왜성(학성공원)의 성격은 보다 명확하고, 역사적 가치가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사료된다.

▲ 1910년대 지금의 반구동에서 본 울산왜성.

이와 더불어 학성공원은 도심의 활력을 불어넣는 생태의 축(軸)이기도 하다.

왜성은 조선의 성곽과는 달리 여러 단(段)으로 나누어서 만들기 때문에 벌목과 간벌, 삭토(削土) 등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1597년 울산왜성 축조 당시 필봉(筆峰) 즉 도산(島山)의 나무와 지형이 잘려나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후 꾸준히 회복하던 숲은 1913년 추전(秋田) 김홍조(金弘祚)가 벚나무를 조림하면서 현재 모습의 기틀을 갖추었다. 도심에서의 숲은 단순히 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거점공원(센터럴파크)의 기능을 가진다. 나무가 흔치 않은 도심에서 숲은 치유와 사색의 장소가 되기 때문에 도시민은 공원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거주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공원의 수법들은 개개인에 의해 거주지에 이입되어 생태도시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물론 이것 또한 도심공원으로서의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 졌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울산왜성의 인근에는 학성 제2공원, 즉 신두산(神頭山, 학성산(鶴城山))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생태의 축은 서북쪽으로 뻗어 함월산(含月山)으로 향한다.

울산왜성은 도심에 위치한 학성공원이다. 이제 울산왜성은 왜성 그 자체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닌, 도시역사공원으로서, 울산 원도심의 활력을 불어넣을 또 하나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수행할 때가 도래하였다.

▲ 일제강점기 울산성지(울산왜성) 사진엽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즈음에서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주지하여야 할 것은 울산왜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간혹 언급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왜군들이 만든 성을 굳이 문화재로 지정해서 지켜야만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문화재(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선조들이 물려주었거나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문화재(문화유산)는 크게 2가지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문화재’와 ‘기억해야 할 문화재’다. ‘자랑스러운 문화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자부심을 불러 넣어 주는 것이며 ‘기억해야 할 문화재’는 내일을 살아갈 후손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울산왜성’은 우리들이, 그리고 내일의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문화재’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무엇 때문에 일본이 침략했는지, 침략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우리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후손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가 명확해 진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이 왜 울산왜성을 보존해야 하는가?’의 이유로 다가온다.

특히 ‘자랑스러운 문화재’에 비해 ‘기억해야 할 문화재’가 더욱 많은 문화콘텐츠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면, 활용의 차원에서도 주목할 이유가 생긴다.

울산왜성과 학성공원이 서로 공존하는 그 교점에서 이제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문화재’로서의 성격과 가치를 유지하되, 또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울산왜성을 어떻게 정비하고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비록 더딜지언정 차근차근 찾아질 것이다. 이창업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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