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이 덕목인 자연형 공원에
“이상한 조형물이 왜 자꾸 늘어날까”
과시욕 덜어낸 ‘산소 같은 행정’ 절실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A: 울산에 왜 이상한 조형물이 자꾸 늘어나죠. 울산대공원 남문광장에는 하트를 그리고 있는 손 조형물이 있어요. 포토존이라고 해놓은 모양인데, 형태도 서투른데다 색감까지 칙칙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언짢아요.

B: 장미 정원 안쪽에 있는 갈티못에 만들어 논 나무데크는 넘 거창해서 아담한 연못의 정취가 다 사라졌어요.

A: 연못 속에 세워 논 꽃모양의 커다란 조형물이나 연못가를 빙 둘러 심어놓은 장미 모양의 인공꽃은 또 뭐죠. 솔향이 은은하고 호젓해서 즐겨 찾던 산책길이었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난데없이 연예인 이름을 딴 숲도 우스워요. 그 옆으로 야생화와 약초를 심어논 식물원도 있는데 그건 관리를 안 해 다 말라 죽었어요. 그 좋던 소나무를 베어내고 꽃을 심었으면 잘 가꾸든지. 최근엔 메밀밭도 조성했어요.

B: 꽃도 있을 데 있어야죠. 하나라도 예술성을 갖춘 제대로 된 조형물을 세워서 상징이 되도록 하든가….

지난 6월27일 ‘태화강대공원, 간절곶처럼 될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난 뒤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나타냈다. 미술을 전공한 A, 수필가인 B도 그들 중 한명이다. 오랜만에 함께 한 식사자리는 태화강대공원의 ‘죽순 모형물’을 시작으로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어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조형물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졌다. 다소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이긴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결코 그들의 남다른 취향 탓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태화강대공원이나 울산대공원은 자연형공원이다. 자연형공원은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덕목이다. 놀이공원이나 체육공원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철저하고도 섬세하게 관리하되 그 결과는 마치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일정 영역을 놀이공원화하더라도 자연 그 자체를 즐긴다는 원칙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관리를 하지 않은 것처럼’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행정의 수장이 된 정치인들은 무언가 했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정치적 과시욕을 추진력으로 해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과유불급일 때도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지방자치 20여년 동안 알게 모르게 자치단체장의 과시욕이 일반 공무원과 공기업까지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행정에 스며든 과시적 정치를 빼내는 ‘정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행정(administration)의 어원은 봉사(ministratio)라는 라틴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보이지는 않는 ‘산소 같은 행정’의 부피가 더 커졌으면 한다.

최근 백두산을 다녀왔다. 정상에 펼쳐진 천지의 감동이야 더할 나위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곳은 왕지화원(王池花園)이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초원에 1000여종의 야생화들이 자연 그대로 흐드러져 있어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졌으나 한 길로 길게 이어진 나무데크 외엔 아무런 시설도 없었다. 물론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는지 휴지 한조각 발견할 수 없었다. 키를 낮추어 꽃과 대화를 나누며 데크를 따라 걷는 1시간여, 오롯이 자연이 전해주는 감동과 울림을 만끽했다.

10년 전 다녀온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市)의 보틀래이크포레스트파크(Bottle Lake Forest Park·1000㏊)와 스펜스파크(Spencer Park)에서 느꼈던 그 당혹감도 다시 떠오른다. 깨끗하고 쾌적했지만 키 큰 나무들만 가득했고 나무 사이로 한참을 걸어가자 난데없이 호수가 나타났다. 자연형 공원이 익숙지 않았던 터라 뭔가 색다른 시설도 없는 그곳을 자랑삼던 그 도시의 공무원들이 꽤나 낯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 도시에는 공원담당 공무원이 15명이나 됐다. 그들의 ‘산소 같은 행정’이 크라이스트처치시를 ‘가든시티’(Garden City)로 불리게 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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