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여옥은 오랜만에 소후궁으로 수경과 꺽감을 불렀다. 궁에 들어온 지 수 개월이 지났건만 여옥은 수경과 꺽감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옥은 꺽감을 바닥 모를 애정과 애잔함의 눈으로 보았다.

‘핏덩이를 수경에게 맡기고 얼마나 통곡했던가. 모진 풍파를 겪고도 이리도 건강하고 늠름하게 자라다니.’

수경이 여옥에게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오래 있지는 못합니다. 태학에서 고구려 소년들의 활쏘기와 말타기 경기가 있어서요.”

“응. 수경이가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구나. 그 경기에 거련 태자도 참석하느냐?”

“예. 하지만 우리 꺽감이 태자를 이길 것입니다.”

여옥이 황급히 앞으로 나아 가 꺽감을 안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 꺽감아, 거련 태자를 결코 이겨서는 아니 되느니라.”

“왜요, 마님?”

“태자님은 장차 광개토태왕의 자리를 이으실 분, 그 분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꺽감아, 항상 태자 앞에서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고 겸손함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래야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고 생명이 보전되느니라. 알겠느냐?”

여옥이 꺽감에게 단단히 이른 뒤 수경에게도 경계의 눈빛을 멈추지 않았다.

“수경아, 장화황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예의염치를 잘 가르치도록 해.”

“꺽감이 아이답지 않게 예의가 바르고 눈치도 빠릅니다.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래, 네가 아이를 맡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하는데.”

“아니 되옵니다. 지금 총총걸음으로 나서야 합니다.”

여옥이 꺽감과 작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손을 흔들고 떠나가는 꺽감의 얼굴뿐만 아니라 걸음걸이와 뒤태마저도 하령왕을 닮았다.

 

꺽감아, 너와 함께 한 시간은 꽃그늘처럼 짧고, 그리움과 한숨으로 뭉친 세월은 너무나 길구나. 너를 떠나보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죽을 것만 같구나. 마음은 화살처럼 날아가 너를 뒤따르고 싶지만 선 채로 이 자리에 망부석이 되는구나. 차라리 빗물이라도 되어 네 몸이라도 적셨으면. 계절에 따라 각자 홀로 꽃이 피고 지듯 이렇게 헤어져 살면서도 언젠가 시절 인연을 쫓아 너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잘 날이 있으리라.

수경과 꺽감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앞마당이 소요했다.

화려한 자색 황후복에다 금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장화황후가 시녀와 비빈들을 이끌고 소후궁으로 왔다.

황후가 여옥의 허름한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소후, 안녕하신가?”

“예, 마님의 은총 덕분에 무탈합니다.”

“오늘 태학에서 소년들의 활쏘기와 말타기 경연이 있다고 해서 나섰네. 폐하도 참석해 관람하신다고 하니 함께 가지 않겠는가?”

우리말 어원연구

배우다. 뵈흐리다(동국정운). 【S】vyahridha(브야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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