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3주간의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았다. 개학 전 아이들의 SNS에서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짧은 방학에 대한 아쉬움과 친구들을 다시 본다는 흥분된 반응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 개학, 다시 시작된 규칙적이고 긴장된 하루에 아이들은 매우 힘들어 했다.

개학 후 첫 시간. 첫 수업은 놀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개학을 맞은 복잡한 심경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하는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포스트 잇에 방학동안 있었던 일을 15자 내외로 표현해 칠판에 붙이는 미션을 줬다. 저마다 자신의 방학을 떠올리며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붙여진 노란 종이에는 15자로 압축된 그들의 방학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아이들의 방학에 대한 소회는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Every day, Saturday’로 표현할 만큼 방학이 즐겁고 행복했던 아이. ‘맹방해수욕장에 다녀왔다’처럼 여행으로 추억을 만든 아이. ‘국내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갔다’처럼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한 친구. ‘TV 속에서 살았다’ 또는 ‘나는 침대와 사랑에 빠졌다’와 같이 집에서 머물며 여유를 즐긴 친구들. 저마다 자신의 방학을 어떻게든 규정지으려는 노력 속에 그들의 방학 풍경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쪽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내용은 ‘내가 학생이란 걸 잊을 뻔 했다’로 표현된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공부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야만 인정받을 수 있고,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갈 수 있다는 무거운 마음이 방학 내내 그리고 방학이 끝난 지금도 아이들의 마음을 옥죄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쪽지를 하나씩 읽으며 웃고 있는 와중에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2학기 수업은 성적으로 환산된 공부가 아닌 공부하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또는 그것만이 답일까? 하는 의문만 더해졌다.

방학은 재충전의 시간임에 틀림없다. 한자로 놓을 방(放)과 배울 학(學)의 만남, 손에서 배움을 놓아 버리는 시간이다. 더위와 추위의 극단적인 날씨 탓에 학업에 전념할 수 없었던 선인들의 생각이 방학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무더운 여름이면 방학(손에서 공부를 놓고)하고 시원한 냇가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벗들과 시를 읽었다고 한다. 우리의 방학도 그랬으면 좋겠다. 잠시 공부를 손에서 놓고 자연과 벗하며 인생을 느끼는 시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먹고 자고! 행복한 반복의 향연!’이란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아마 우리 학교 학생 중 최고로 여름방학을 즐긴 친구가 아닐까? 그야말로 자연인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즐겼고 먹고 자는 일상의 행위를 향연으로까지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가진 학생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방학이면 나 또한 ‘내가 교사란 걸 잊을 뻔’하며 산다. 2005년 첫 발령지 울산에서 처음 맞은 여름방학의 기억은 진하해수욕장에서의 윈드서핑이었다. 이번 여름방학은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며 동양의 라틴어인 한문을 어떻게 잘 가르쳐볼 것인가를 고민하며 보낸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학이야말로 학교가 학생에게 그리고 교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자기 발견과 성숙의 시간이 아닐까?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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