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태학 앞 넓은 경연장에는 돌로 만든 둑방 같은 석대가 쌓여 있고, 석대 위에는 보좌와 의자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경연장에는 오색 깃발들이 나부끼고 석대 위에는 고구려 문장인 삼족오의 깃발이 펄럭였다. 태학에 다니는 고구려 왕족과 귀족 자제들의 무예 경연을 보기 위해 대대로, 태대형, 울절에서 미관말직인 저형, 선인, 자위까지 대소신료들과 성주와 외국사신, 두메산골에 있는 하호들까지 상경해 경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윽고 광개토태왕과 황후가 보좌에 앉자 고구려 국악이 울리고 군무가 벌어졌다. 경연장에는 태학 학생들의 씨름, 검술, 창술, 격구, 활쏘기, 마상재, 말타기 등이 펼쳐지고 있었다. 경연장에서 성적은 무예 점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안간힘을 다해 최선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고구려 황실이 관심이 쏠린 곳은 오로지 거련 태자의 무예 경연이었다.

황후가 태왕에게 말했다.

“저기 태자를 보세요. 갈수록 당신을 닮아 씩씩하고 늠름하지 않습니까?”

“과연. 천신녀의 말이 맞긴 맞군. 가야 아이 꺽감과 동무가 된 뒤로 건강을 되찾고 성격도 많이 활달해졌어.”

태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에 쓴 조우 금관이 햇빛에 번쩍였다. 모든 경연은 거련 태자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다. 거련은 아동부 씨름, 검술, 창술, 마상재에서 압도적으로 수위를 해 따라갈 자가 없었다. 다만, 꺽감이 멀찍하게나마 차위를 유지한 채 거련을 따라잡고 있었다. 거련이 승리할 때마다 풍악이 울리고 황후와 비빈, 신료들의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러나 광개토태왕만은 말없이 팔짱을 낀 채 경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화황후가 무표정한 태왕에게 말했다.

“폐하, 폐하는 우리 아들 거련이 승리하는 데도 즐겁지 않습니까?”

“아직 중요한 활쏘기와 말타기 경연이 남아 있으니 좀 더 지켜봅시다.”

꺽감은 다해와 소후의 당부대로 지금까지의 무예 경연에서 일부러 거련에게 져주었다. 하지만 활쏘기와 말타기에서만은 꼭 거련을 이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다 졌으니 활과 말에서 이겨도 누가 나보고 뭐랄 사람은 없을 거야.’

하지만 꺽감은 어린 욕심을 누르며 활쏘기에서도 거련에게 양보했다. 꺽감은 거련에게 조금씩 앞서 나가다 마지막 세 발을 모두 과녁에 빗맞혔다. 거기한량이 연달아 ‘실!’ ‘실!’ ‘실’이라고 외쳤다. 반면에 거련은 마지막 세 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켜 거기한량이 깃발을 높이 들고 ‘거련 태자님, 일시, 이시, 삼시 모두 명중이오!’라고 외치며 춤을 추었다.

 

말타기도 마찬가지였다. 위풍당당한 신마 설모를 탄 거련과 초라한 박모를 탄 꺽감과는 애당초 경쟁이 되지 않았다. 마감 밑에서 말을 다루는 기술을 익힌 꺽감은 힘껏 박차를 가해 한 순간 거련의 말을 거의 말목 하나 차이까지 따라잡았으나 마지막에 박모가 숨을 헐떡이며 뛰지 않아 크게 뒤처지고 말았다. 거련이 승리하자 경연장에 풍악이 울리고 오색 깃발이 나부끼면서 ‘호태왕 만세! 거련태자 만세!’ 소리가 고구려 하늘 높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광개토태왕만은 건성으로 박수를 치며 중얼거렸다.

‘나의 매 눈은 속일 수 없지. 오늘의 승리자는 거련이 아니고 꺽감이다. 내가 가야산의 호랑이 새끼를 데려와 키우고 있군.’

우리말 어원연구

두메산골. 두뫼. 【S】dhumaya(두마야), a house or cottage in the valley of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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