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도쿄도지사들 추도문 보내…조선인 학살 부정 움직임 조장

▲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일본 대중에 인기가 높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관례를 깨고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개혁을 기치로 도쿄도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고이케 지사가 극우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이런 행태를 두고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움직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4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는 다음달 1일 도쿄도(東京都)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리는 간토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추도 행사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 측 요구를 거절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 자경단 등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 행사는 일·조(日·朝)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들 주관으로 매년 열려왔다.

그동안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등 전임 도쿄도지사들은 매년 추도문을 보냈다.

▲ 간토(關東)대지진 발발 91주기인 2014년 9월 1일 도쿄 스미다(墨田)구의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에 자리한 조선인학살 희생자 추도비에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관계자가 헌화하고 있다.

고이케 지사도 취임 직후인 작년에는 추도문을 전했으나 올해는 돌연 입장을 바꿨다.

고이케 지사의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적힌 희생자 수가 6000여 명이라는 문구와 관련된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고이케 지사의 작년 추도문이 공개된 이후, 자민당 소속 도쿄 도의원이 비문에 적힌 희생자 수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지적을 했고 고이케 지사는 “관례적으로 추도문을 내왔지만 앞으로는 내용을 살펴본 뒤 추도문을 발표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대형지진으로,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되자 자경단, 경찰, 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의 수와 관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이 6661명이라고 적었고 일본 정부의 2009년 보고서도 “간토대지진의 사망·행방불명자는 10만 5000명 이상이며 이 중 1%에서 수(數)%가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이 됐던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57) 일반사단법인 호센카(봉선화) 이사가 93년 전 벌어진 간토(關東)대학살을 목격한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기록'(겐다이쇼칸<現代書館>)을 지난해 9월1일 발행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고이케 지사의 추도문 제출 거부가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피해와 관련된 사실을 왜곡하려는 움직임에 불을 댕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극우들은 간토 대지진의 피해자 수가 부풀려졌고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당시 조선인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나카 마사타카(田中正敬) 센슈(專修)대 교수는 “당시 조선인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학계에서는 흔들림 없는 정설”이라며 “고이케 지사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외국인 차별적인 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가담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고이케 지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항마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평화헌법 개정이 목표인 극우보수단체 일본회의에서 활동하고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한 바 있는 극우 인사다.

특히 작년 도쿄도지사 취임 후에는 전임 지사의 제2한국학교 부지 유상 대여 방침을 백지화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