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환기자 사회부

수도권 주민들에게 “국립산업기술박물관(국립산박)을 울산지역에 건립하려고 하는 데 당신은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그것도 다른지역 일에 세금을 더 낸다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질문으로 경제성을 평가하는 예타방식 때문에 시민들의 염원을 모아 어렵게 울산에 유치했던 국립산박 건립사업이 물거품됐다.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이끈 산업수도 울산시민의 자긍심에 상처를 입힌 예타 방식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타 운용지침’에 따르면 비시장가치재(박물관, 도서관, 생태공원 등)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는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 등 3가지 항목을 분석한다. 항목별 가중치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경제성이 40~50%, 정책성이 25~35%, 지역균형발전이 20~30%다. 가중치가 가장 큰 경제성이 결국 예타의 성패를 사실상 좌우한다. 비시장가치재에 대한 경제성(B/C)은 CVM(조건부가치측정법)을 주로 활용한다. CVM은 가치 측정이 어려운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할 때 상황을 가정하고 국민이 이를 위해 세금을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묻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비수도권 지역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전국의 1000가구를 무작위로 뽑아 ‘울산에 박물관을 건립하는데 드는 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다. 1000가구 중 전국 인구의 22.9%를 차지하는 서울에 229가구가, 경기도 24.3%(243가구)가 각각 배정된다.

결국 전국 인구의 1.9%인 울산에는 고작 19가구만 할당된다. 경제성 수치가 0.16(1이상 통과)으로 터무니없이 낮게 나온 이유다. 1000가구 중 693가구가 ‘지불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평균 지불의사액도 569.07원에 불과했다. 사업의 당위성을 따지기 보다는 인구규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현 예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예타제도로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에서의 공공재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정부의 기조와 역행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생각이라면 예타 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최창환기자 사회부 cchoi@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