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길 울산 중구의회 의원

500년 역사를 간직한 조선시대 임금이 집무시 입던 옷을 ‘곤룡포(袞龍袍)’혹은 ‘용포(龍袍)’라 부른다. 뿐만 아니라 당시 임금을 용(龍)에 비유해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의 몸을 ‘용체’, 임금이 흘리는 눈물을 ‘용루’라고 불렀다. 왜 임금을 용에 비유했을까? 그 답은 용이 가진 상징성에 있다. 용은 고대부터 비와 구름의 조화를 다스리는 수신(水神), 해신(海神)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국가의 수호신이자 왕실의 조상신으로 용이 숭배돼 왔고 결국 이는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물을 다스리는 일, 즉 치수(治水)는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던 셈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치수는 중요한 국가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 관리시스템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해 우리 중구는 태풍 차바로 인한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곳곳에서는 피해 복구가 진행 중이며 수많은 주민들이 비만 오면 두려움을 느끼는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 최근 중구가 보여주는 치수정책은 당혹감을 넘어 우려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중구는 5개 구·군 중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이 때문에 여름철 마땅히 피서를 즐길 유희시설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13년 동천 야외물놀이장을 시작으로 2014년 다전물놀이장, 지난해 성안물놀이장에 이어 올해 복산물놀이장까지 도심 곳곳에 야외물놀이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중구의 미래인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물놀이 공간이 마련된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물놀이장 이용객 편의만 치중한 탓에 정작 안전에 대한 문제를 간과한 부분이다. 척과천변에 마련된 다전야외물놀이장은 올해 물놀이장 건너편에 주차장을 조성하면서 진입로를 목적으로 성인 키 높이의 두 배가 넘는 거대한 강둑을 쌓았다. 척과천이 평소엔 건천이지만 많은 비가 오면 배수로의 역할을 하는 자연 재해예방기능을 하는 하천에 둑을 쌓아올려 조성한 진입로가 하천의 흐름을 방해하면 인근 농경지 등은 침수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을 위한 즐길거리 제공도 좋지만 홍수를 막아 구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구청이 되레 척과천에 둑을 쌓아올리고 주차장을 성토해 홍수에 취약하게 만든 셈이다. 한마디로 치수의 기본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만약 척과천이 국가하천으로 지정돼 하천내 설치되는 모든 시설물의 인허가권이 구청이나 시청이 아닌 국토부 산하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었다면 과연 진입로 조성을 위한 거대한 제방쌓기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중구가 조성한 하천변 야외물놀이장에 매년 투입되는 과다한 복구비용도 문제다. 지난해 태풍 차바로 시설 상당수가 유실되면서 동천물놀이장은 올해 10억원의 복구비가 투입됐고 다전물놀이장은 3억원이 소요됐다. 최근 우리나라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빈번하고 있다. 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를 쏟아 붓는 기상천외한 날씨에 울산도 예외일 순 없다. 하천변에 조성된 물놀이장은 조성비용이 낮은 반면 호우에 취약한 단점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해 해마다 호우피해가 생기면 매번 10억원 이상의 복구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말과 같다.

흔히 법치주의를 이야기할때 법에 의한 지배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법치주의는 법에 따라 다스린다는 원칙이 아니라 국가나 지방정부를 통솔하는 최고 책임자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법률로 제한하는 원칙이라 설명한다. 결국 법의 엄정한 집행과 그에 따른 복종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조건과 원칙이 바로 법치주의인 셈이다. 주민이 선호하니까 어떻게 하든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은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은 물론 안전불감증의 시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은 법의 기준아래 항시 조심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성과도 같은 것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영길 울산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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