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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
[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살아있는 전통·문화의 집결지 ‘향교’47)울산의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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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31  22: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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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향교의 2017년도 춘기 석전대제 모습.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으로
사립학교는 서원, 공립학교는 향교
선현에 제사지내고 공부하는 학교로
울산에는 중구·언양에 위치

지역의 구심점으로
과거시험 준비·도서관 기능에
교화기능·언론이 집결되는 곳이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현재 각종 전통강좌로
지역 평생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귀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근의 이름 있는 서원인 옥산서원 정문 현판 역락문(亦樂門)도 이 글문에서 따왔다 하고, 그 외에도 많이 인용되는 글귀이다. 이 외에도 선조들의 배움에 대한 글귀는 무수히 많다.

신당서(新唐書), 구당서에 인용한 대로 우리의 선조는 배움을 무엇보다 중요히 여겼으며 배움의 기회가 쉽지 않았던 계층의 아이들도 몰래 청강하는 모습이 옛 그림으로 남겨져 그 열정과 함께 애잔한 마음이 들게도 한다,

조선은 유학이 사회전반의 기본이념으로 정착하며 선비문화가 확산되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향교와 서원이 급격히 확산되는데 사립학교인 서원(書院)에 대비해 중등교육의 양대산맥인 공립학교 향교(鄕校)도 중요 교육기관이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교동, 교리이라는 지명이 있고 이는 거의 향교가 있었던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한양의 사부학당에 대비해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한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관의 주도로 건립한 곳으로 양반이 아니더라도 양인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되었다.

공간의 구성은 대체로 앞쪽이 학업을 위한 강당인 명륜당, 뒤쪽이 선현을 제사 지내는 사당인 대성전의 공간으로 이를 전학후묘(前學後廟)형식이라 하며 경주 향교처럼 반대로 지어진 경우도 있다.

이는 땅의 생김새에 따른 것 이라고도 하며 규모가 큰 곳인 경주향교는 신문왕시 신라 최초의 유학교육기관인 국학이 설치된 곳이며 진평왕의 딸로 알려져 있는 요석공주가 기거했던 요석궁터 라고도 한다.

   
▲ 향교는 한양의 사부학당에 대비해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한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관의 주도로 건립한 곳이다. 양반이 아니더라도 양인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됐다. 사진은 울산향교 명륜당.

서원뿐만 아니라 향교도 역시 제향과 강학이라는 두 가지의 역할을 주도했으며, 앞서서 가르침을 준 선현에 제사지내고 공부를 하는 학교의 기능은 같으나 서원과 향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관립과 사립이라는 것 외에도 배향하고 춘추향사 즉, 제사를 올리는 인물, 선현의 맥락이 다르다는 점이다.

서원은 대체로 당파, 혹은 학맥, 집안의 선현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나 향교는 대체로 공자, 맹자, 안자, 자사, 증자 중국의 5성과 동방 18현, 송조2현 등 중국과 한국의 유학 전체를 아우르는 선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동방 18현에는 설총, 최치원 등 신라의 학자와 조선, 고려의 학자들이 포함되어있다.

조선 성종 때 일읍 일 향교(一邑一鄕校)를 목표했다고 하니 당시 울산군과 언양현에도 향교가 건립되었다.

울산향교는 선조 시 지금의 반구동 구교마을이라는 곳에 건립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멸실해 17세기에 지금의 중구 교동의 향교로 옮겨지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의 모든 구성체을 다 갖춘 것은 아니었으나 차츰 모양을 갖춰 1711년에 지금의 문루 현판인 청원루를 붙였다 한다.

울산향교는 1997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7호로 지정되었다. 위엄과 학구적인 모습을 갖춘 정갈한 공간이다.

언양향교도 15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번의 이건(移建)을 거쳐 17세기 중엽 지금의 삼남면 교동으로 자리잡았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8호이다.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후기에 건립되었고 언양현 사람들의 자부심이 어린 곳이라고 하며 급속히 바뀌는 현대식 건물 사이에서 고풍스런 멋을 풍기는 단아함이 돋보인다. 이 곳에는 하마비라고 하는 표지석이 있으니 살펴보자.

본래 조선의 건축이념에 따르면 좌묘우사라 하여 중심인 동헌의 좌측에 향교가, 우측에 사직단(社稷壇)이 건립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울산과 언양향교는 지금의 자리는 옮기는 과정에서 알맞은 부지를 찾다보니 원칙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는 지방으로 부임을 꺼려하는 교수와 군역 등의 회피처로 이용되며 그 기능이 쇠퇴하는데 울산과 언양 향교도 조선 후기로 가며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갑오개혁 이후로는 제향의 기능만 남았을 것이며 지금은 봄, 가을로 석전제를 지내고 있다.

과거에는 보통 음력 4월 초정일(初丁日)에 제를 지내며 제를 지낼 때 기회가 되어 참관해보면 좋은 경험이 되겠다.

   
▲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어느 책에서 ‘학교는 지역민의 삶의 일부분’이라는 글을 읽었다. 꽤 인상 깊었다. 결국 서원과 함께 향교도 그 지역의 구심점으로서 대과를 위한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기능과 함께 지역의 교화기능과 언론이 집결되는 곳, 의병활동의 근거지, 도서관 등의 역할을 하며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서원과 향교는 출입문 높이도 대체로 높지 않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라는 의미다. 또 사용하는 문방사우도 화려한 문양이 아니었다. 공부와 선현을 모시는 서원과 향교용은 소박하고 단순한 모양이었다 한다.

현재의 향교도 변화하고 있다. 살아있는 전통은 현재와 교류해야 한다. 학교로서의 기능은 하지않지만 평생교육기관으로서 각종 전통강좌와 인생의 통과의례의 하나인 성년식을 치르면서 술을 마시는 주도(酒道)를 가르치고 인간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알려주는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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