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다리의 통이 넓고 외형이 직선적이며 절두형이다. 다리에 2단으로 투창을 뚫을 때 아래 단과 위 단을 서로 엇갈리게 하여 사다리꼴의 넓은 굽구멍을 뚫는다.” 고고학사전에 적힌 신라지역 굽다리접시에 대한 설명이다.

굽다리접시는 원삼국시대 이후 남한의 대표적인 토기형태로 고대의 무덤과 생활유적을 편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굽다리의 높이, 벌어진 각도, 다리에 뚫린 구멍의 크기와 위치, 모양 등 하나의 그릇에서 관찰할 수 있는 소소한 속성들이 그 시대 정치세력이나 문화의 전파와 이동을 알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우리나라에서 굽다리접시가 처음 출현한 것은 신석기시대이지만 그 수가 적다. 청동기, 초기철기시대를 거치면서 많아져서 여러 토기들 중에서도 중요한 하나의 기종으로 자리를 잡는다. 원삼국시대에는 변·진한지역의 목곽묘에서 주로 출토된다. 삼한 중 마한지역에서는 제작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문화의 전파나 전통이 세력과 지역적 특성을 크게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4세기에 접어들면 경상도지역에서 굽다리접시(高杯)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고구려에서는 굽다리접시를 찾기가 어렵다. 백제에서는 다리가 낮고 투창을 뚫지 않았거나 둥근 구멍을 뚫은 것 등이 출토되고 있다. 신라나 가야지역과는 양식적으로 확연히 다르다.

▲ 울산의 삼국시대 고배와 토기들 (<울산 상안동고분군>, 울산발전연구원, 2015)

5, 6세기가 되면 그릇의 크기는 작아지고 굽이 낮고 굽에 구멍이 없어지는 등 굽다리가 간략해진다.

소소한 하나의 양식만으로도 우리가 살지 않은 시대의 문화와 세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행복은 유물이 있기에 가능할 일이다. 토기의 작은 편 조각 하나도 소중한 이유다.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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