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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영환의 건축과 문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14)]국가는 무엇으로 지켜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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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7  22: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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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에서 가장 경이로운 유적으로 꼽히는 시기리야(Sigiriya). 어마어마한 사자 발톱 사이로 위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난공불락의 천연요새 ‘시기리야’
바위틈 관문 거쳐 가파른 계단 오르면
195m 불쑥 솟아오른 바위산 정상부에
궁궐·관청·사원 등 다양한 건축유적

아버지를 죽이고 차지한 왕좌
보복의 두려움으로 철옹성 지었지만
도시와 문명 지키는 사람을 배제한채
스스로 자초한 고립으로 순식간에 몰락

시기리야(Sigiriya)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경이로운 유적이다. 밀림평원에 195m 바위산이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은 지형부터 외경스러움을 연출한다. 누군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만화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와 같다고 표현했다. 가히 그럴 만 하다. 내 눈에는 요녕성의 고구려 유적 오녀산성과 유사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방이 깎아지른 수직절벽으로 접근을 불허하고 정상은 평지를 이루는 직육면체의 거대한 너럭바위이다.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역사는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자출신의 첫째 왕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권을 차지한 후 적자인 동생의 보복이 두려워 이곳으로 왕도를 옮겨 성채를 구축했다고 한다. 철옹성 같던 이곳은 18년 후에 쳐들어온 이복동생의 군대에 허망하게 패하고 자신은 자살함으로써 도시도 몰락하게 된다. 겨우 18년을 지키려고 이 어마어마한 도시를 만들었단 말인가. 이후 14세기까지는 불교수도원으로 사용되다가 그나마 정글에 덮여 사라졌는데, 19세기에 영국인들이 발견하여 발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전설이 역사가 된 현장을 확인하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입장권을 파는 입구 부분에 큰 해자가 나타난다. 바위 산 아래 평지부터 성곽의 영역이었음이 분명하다. 멀리 바위산으로 향하는 길 양옆에 여러 형태의 수조와 건물유적이 노출되어 있다. 백성들과 군사들의 대부분은 이 아래도시에 거주했을 것이다. 막혀있을 것 같던 길은 큰 바위의 틈새를 열어 겨우 한 사람씩 드나들만한 통로를 만들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도 바위틈과 같은 관문을 여러 차례 통과해야 한다. 아침나절임에도 관광객들은 뒷통수만 보일 정도로 줄을 이어 오른다. 중턱쯤 올라 한숨을 돌리는데 난데없이 원숭이 떼와 개떼가 나타나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놓고 맹렬히 싸움을 벌인다. 견원지간의 현장이다. 욕망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앞에는 수직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철제사다리가 사람들을 달고 있다.

미인도로 향하는 길은 돌음형 철제계단이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밑을 보면 엉덩이가 간질거릴 정도로 공포스럽다. 난간을 움켜쥐고 위만 보고 올라야한다. 드디어 절벽에 동굴을 파고 프레스코화로 그린 벽화와 만난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려져 있어 미인도라 부른다. 자신이 죽인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그런다고 아버지의 용서를 받았을 리는 만무하니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몇 백 개에 달했으나 대부분 마멸되어 현재는 18개의 그림만 남아있다.

돌음 계단을 다시 내려와 바위산의 입구로 향한다. 그 도중에 바위를 파서 베란다와 같이 만든 회랑과 만난다. 바깥쪽으로는 벽을 쌓았는데, 벽면을 반들반들하게 갈고 닦아 거울과 같이 만들었다고 거울 벽(mirror wall)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지나면 드디어 바위산 성채의 입구인 사자의 문에 도달한다. 수직 절벽을 타고 유격훈련 하듯 올랐건만 종점이 아니라 현관에 불과했던 셈이다.

어마어마한 사자 발톱 사이로 위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다시 수직절벽에 설치된 철제계단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면서 정상으로 향한다. 철제계단이 없었던 옛날에는 도데체 어떻게 오르내렸을까? 적들이 침입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임에 틀림이 없지만, 사는 사람도 오르내리기 어렵다면 어떻게 도시생활이 이루어졌을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떼면서 사람에 밀려 가파른 계단을 기어오른다. 땡볕 무더위에 흘리는 땀인지 공포의 식은땀인지 알 수 없이 얼굴과 등을 흠뻑 적신다. 간신히 정상부에 도달했을 때 드디어 사방의 경계가 터지면서 너럭바위에 축조된 도시의 흔적이 나타난다. 거대한 항공모함의 갑판 같은 정상부에 도시를 만든 것이다. 궁궐은 물론이거니와 관청과 사원 등 다양한 건축유적이 널려져 있다. 또한 바위산 아래 광활한 밀림이 지평선까지 펼쳐진다. 밀림의 평원에 수놓은 호수와 강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마추픽추! 그것은 분명 페루의 마추픽추만큼이나 감동적인 장면이다. 전설과 역사가 현실이 된다. 석재와 벽돌로 축대를 쌓고 벽을 만든 공간의 흔적이 너무도 생생하다. 수영장만큼 큰 수조에는 아직도 물이 풍성하게 담겨있다. 장소의 외경, 놀라운 도시문명,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몰락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마추픽추와 너무 닮았다. 두려움으로 만든 천험의 요새는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자초했다.

시기리야의 역사를 반추하기에 한 시간은 너무도 짧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내려오면서 사라진 도시와 문명들을 생각한다. 국가는 무엇으로 지켜지는가? 도시와 문명을 지키는 것은 요새가 아니라 사람이다. 아무리 철옹성 같은 요새라도 지켜낼 사람이 없으면 모래성에 불과하다. 로마의 성채가 철옹성이었기에 천년을 버틴 것이 아니며, 진시황의 함양이 허술했기 때문에 삼십 년 만에 함락된 것은 아니리라. 시기리야는 마추픽추가 그러했듯이 사람보다 자연에 의존하려했던 허망한 욕심 때문에 폐허가 된 것이 아닐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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