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를 시작페이지로 ㆍ 즐겨찾기
전체기사 | 기사모아보기 | 독자투고 | 기사제보 | 알림 | 화촉 | 부고 | 모집 | 자유게시판
오피니언독자기고
[기고]누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9.07  22:12:4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카카오스토리
 
 
▲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미국 정부의 한 전직 보좌관이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사회 내의 제자리에 결합 조직을 재생시켜 놓을 능력이 없다. 정치는 전통적인 도덕 관념을 복원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으로도, 구혼이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회복하거나, 아버지에게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거나, 한때 존재했던 충격이나 수치심을 제자리에 되살려 놓을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도덕 문제들 대부분은 법으로 근절될 수가 없다.” 오늘날 탐욕, 가정 내 혈육 간의 애정의 결핍, 해이한 도덕관, 무지를 비롯하여 사회의 결합 조직을 좀 먹는 여러 요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숱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고, 될 수 있는 대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가 하면, 언젠가는 카리스마적인 뛰어난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가 나타나 자기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사실 2000년 전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며 누구보다도 통치자의 자격을 갖추신 분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분을 왕으로 삼고 싶어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시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내 왕국은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그분은 나중에 로마 총독에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예수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심지어 그분의 추종자라고 공언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종교 지도자들 중 일부는 세속 통치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거나 직접 정치적 지위에 오름으로써,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였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살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특정한 신학자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항쟁을 벌였다. 그들은 이러한 목적으로 해방신학이라는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해방신학에서는 그리스도가 더는 성서적 의미에서만 구원자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도 구원자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미국에서는, 도덕관이 침식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게 된 교회 지도자 여럿이 ‘도덕적 다수’라고 하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그 조직의 목표는 건전한 가정 윤리를 법으로 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정치적 지위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회교국가에서도 여러 단체들은 코란에 더 밀접히 따를 것을 권장함으로 부패와 무절제한 행동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나타난 사실을 보면, 해방 신학이 널리 퍼진 나라들을 포함하여 세계 전역에서 전체적인 도덕관이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면서 그 차이도 계속 벌어졌다. ‘도덕적 다수’가 미국에서 주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설립자인 제리 팔웰은 1989년에 그 조직을 해산하였다. 그 대신 다른 조직들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도덕적 다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폴 웨이리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Christianity Today)라는 잡지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가 정치에서 이길 때조차, 우리의 승리는 결국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유형의 정책을 수립하는 면에서 실패한다” 그는 또 “문화는 점점 더 넓은 시궁창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규모로 문화가 붕괴되는 현장에 살고 있으며, 이 붕괴는 그 규모가 엄청나서 정치를 완전히 압도해 버린다”라고 썼다.

칼럼니스트인 칼 토머스는 정치를 통해 사회를 향상시키려는 노력 가운데서 그가 근본적인 결함으로 여기는 것에 관해 이렇게 밝혔다. “진정한 변화는 일련의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가진 주된 문제들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세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영향력 있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인이든 아니든)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성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카카오스토리 뒤로가기 위로가기
icon인기기사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로그인
- 의견쓰기는 로그인후에 가능하며,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1/3
최근인기기사
1
‘결혼’ 장진영♥강해인, 보기만해도 행복한 투샷...“눈에서 꿀이 뚝뚝”
2
‘얼짱 축구선수’ 이민아, 유니폼 벗으니 ‘모델 변신?’...“남다른 사복센스 깜짝 ”
3
‘학교급식 발견 논란’ 고래회충, 감염증상은?...“한번 감염되면 악물치료법 없어"
4
‘강제출국’ 에이미, 남동생 '폭로 재조명'...“누나는 똑바로 살아야한다”
5
‘5일체류’ 에이미 “내게 기회 한번만 줬으면”...강제출국 당한 후 ‘심경글 보니’
6
현대중공업 도보 5분 거리 ‘울산 전하 KCC스위첸’ 11월 공급
7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7대 집행부 출범식
8
홍수현, 화보같은 일상 속 모습 감탄...“청순미모 폭발”
9
[제98회 전국체전 첫날] 울산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
10
파격할인 제공하는 ‘용인성복자이힐스테이트’ 이목집중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울산광역시 남구 북부순환도로 17 | Tel 052-220-0515 | Fax 052-224-1030 | 사업자번호 610-81-07906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정환
Copyright © 2011 경상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