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방한 당시 히딩크 감독.

청와대 웹사이트 청원에 ‘촛불집회’ 댓글까지 등장
대표팀 경기력·협회 행정 등 실망감 작용…‘2002년 향수’ 자극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한국 축구가 때아닌 ‘히딩크 현상’에 휩싸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거스 히딩크(71) 감독이 다시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다.

진원지는 한국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6일 나온 한 매체의 보도였다.

이 매체는 히딩크 감독의 측근을 인용해 “히딩크 감독은 국민이 원하면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을 의사가 있다”고 전했다.

사령탑 교체 사태를 겪은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힘겹게 본선 티켓을 땄다.

팬들의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히딩크 감독의 복귀를 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히딩크 감독 복귀를 원하는 청원[청와대 웹사이트 캡처]

보도가 나온 이후 청와대 웹사이트에는 ‘히딩크 감독님이 한국을 원합니다! 월드컵 대표팀을 맡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1700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청원을 시작한 이는 “중국 구단의 거액 연봉도 마다한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한 이유는 돈보다는 정서적인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며 “반드시 히딩크를 대표팀 사령탑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딩크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모셔와 주세요’라는 비슷한 내용의 다른 청원 글에도 1200여 명이 동의해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의 댓글[포털사이트 모바일 캡처]

여기에 7일 한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 아래엔 ‘9월 9일 서울 광화문에서 히딩크 감독 복귀 촛불시위가 열린다’는 댓글까지 등장해 그저 히딩크 감독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축구팬의 ‘막연한 바람’을 넘어 하나의 움직임으로 확산할 기세다.

팬들이 대표팀을 맡은 지 15년도 더 지난 히딩크 감독까지 찾게 된 결정적 요인은 현재의 대표팀에 대한 실망감이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위기가 닥치자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이 경질되고 신태용 감독 체제로 새 출발 했지만,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9∼10차전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비겼다.

천신만고 끝에 조 2위를 사수해 본선에 직행했다.

이런 가운데 대표팀 주장을 맡은 김영권(광저우)이 지난달 31일 이란과의 9차전을 마치고 “홈 관중들의 함성으로 인해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공분을 사는 등 선수들의 언행마저 팬들을 자극했다.

여기에 축구협회 행정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더해지면서 본선에 나가도 4년 전 브라질에서처럼 망신만 당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등장했다.

결국 이런 일련의 상황이 성적과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완벽했던’ 2002년의 향수를 다시 불러일으켰고, 그 중심에 있었던 히딩크 감독에 대한 추억까지 ‘소환’하게 된 것이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고도 사실상 ‘퇴진 여론’에 직면한 신태용 감독은 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면서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답답하지만 (그 말을) 히딩크 감독이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히딩크 복귀설’은 정작 히딩크 감독 본인의 입에선 나온 적 없는 얘기다.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인 노제호씨는 문제의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자신이) 한국 축구를 구제해 달라고 히딩크 감독에게 요청했고, 히딩크 감독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나서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히딩크 감독 본인의 공개석상 발언도 한국 복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지난해 9월 한국 축구 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감독직을 다시 맡을 가능성에 대해 “(2002년 월드컵 때와) 같은 성공을 재현하기 어렵다”며 한국 팀을 다시 맡고 싶지는 않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과의 계약 내용을 존중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고, 김호곤 기술위원장도 “불쾌하고 어처구니없다”고 일축해 히딩크 감독 복귀설은 결국 ‘설’로 끝날 가능성이 절대적이다.

다만 축구계 안팎에서는 이런 ‘설’에 이토록 큰 힘이 실리게 된 이유와 과정은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근본적 원인인 한국 축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왜 생겨났는지 축구협회와 대표팀이 깊이 새기고 절치부심해 9개월 남은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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