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성현 울산문인협회장

소설가 김주영 선생이 작가가 되기 위해 서울로 공부하러 가겠다며 집안의 삼촌뻘 되는 분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그 분이 하셨다던 말이 있다.

“문학은 부잣집 둘째 아들이 하는 거라.”

이 말은 남들이 가지 않는 배고픈 길을 걸으면, 곧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조카를 염려해서 한 말일 것이다. 예술이, 술도 밥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하신 말씀이지만 김주영 선생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그런 한계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기회비용은 장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음악, 미술, 무용, 국악 같은 분야는 어릴 때부터 레슨과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정해 놓고 정진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 분야는 거기에 비하면 소위 ‘종이와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되는 장르라고 여겨, 다른 분야에 비해 기회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문학청년의 꿈을 가지고 여기저기 신문사나 잡지사에 투고를 하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세상의 경제와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깊은 시선을 전제로 하고, 세상의 잣대로 재단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파란만장한 인생의 면면을, 혹은 영혼의 깊은 내면을 글로 표현해서 독자의 동감을 얻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해도 그 영광은 그리 길지 않다. 작품이 독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면 그 작가는 세상의 그늘에서 가난과 시름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또 다른 예명이 ‘가난’이라는 서글픈 현실.

이런 차에 울산광역시에서 전국 처음으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창작 장려금 제도’를 도입한다니 이만저만 반가운 일이 아니다. 불안한 삶의 평균대 위를 걷고 있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정책은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의 꽁꽁 얼어버린 마음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마크 트웨인이 말한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나지만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는 말에 문화예술인들을 대입해보았으면 한다.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를 ‘문화예술인’이라고 여길 수 있으려면 그 분야에 입문하여 20여 년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작가로서의 존엄과 대우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러 운 좋고 재주가 있어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창작을 할 수 없는 처지이거나, 먹고사는 일조차 어려운 예술인들이 많다.

우리 울산광역시의 인구가 대략 100만명을 넘는 데 반해, 문화예술인으로 등록된 회원은 5000명이 넘지 않는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에 등록된 전국의 예술인 또한 96만명으로, 채 100만명이 되지 않는다. 숫자상으로만 보아도 예술인들은 분명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룰 문화의 향기는 당장 어떤 힘으로 작용하지는 않더라도 인간의 영혼과 정서, 그리고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임에는 틀림없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술인의 긍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울산광역시가 시행하려는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창작 장려금 제도’는 훗날 아주 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있을 것 같다. 공업도시로 알려져 있는 울산이기에 그런 결정이 더 돋보인다. 부디 어렵고 힘든 예술인들에게 힘이 되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문화는 공연장을 찾아가고, 음악공연이나 연극을 관람하고, 책을 읽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시대가 열릴 것이라 짐작된다.

가을이다. 바람 산산하고 하늘 높고 맑은 날 저녁, 우리 모두 예술문화인들의 공연이나 전시회를 찾아가자. 내친김에 14일 개막되는 ‘전국무용제’를 찾아 이들에게 우애로운 박수를 보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본다.

천성현 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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