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찬 스마트동물병원 원장

개는 약 1만2000년에서 1만5000년 전 쯤에 가축화(domesticated)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나 말 같은 다른 가축들보다 최소 50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DNA분석에 의하면 조상인 늑대로부터 개가 분화되기 시작한 것은 3만2000년쯤이라고 한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시기인 약 3만5000년과 불과 3000년정도의 시차를 두고 인간과 개의 관계는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인간이 사냥한 것의 잔여물을 획득하기 위해 비교적 가까운 도주거리에 머물러 있다가 점차 인간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게 되고 이윽고 인간의 사냥에 함께 참여, 그 획득물의 일부를 먹이로 제공받는 가축의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개는 이런 가축화의 단계에 이어 다른 가축들과는 다르게 혁명적인 진화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 것이 가족화이다. 인간과의 감정교류가 가능한 개의 특성 때문에 개는 인간의 영역 깊숙이 들어와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야생에서 가축으로, 가축에서 애완동물로,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진화한 것이다.

고양이는 개보다 가축화된 시기가 훨씬 늦다. 기원전 2000년정도 즈음에 이집트에서 농경사회로 접어든 인간의 식량저장을 위해 아프리카 들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어 인간 주변에서 서식하도록 유도한 것이 그 기원이다. 고양이는 귀엽고 앙증맞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중세 유럽에서 사악한 동물로 인식돼 한때 박멸의 대상으로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특유의 친화성 때문에 인간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청결함과 관리의 편리함 때문에 대표적인 애완동물이 되었다.

필자와 같이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인간의 감동적인 사례를 수없이 많이 경험하고 있다.

어느 70대 노인이 아픈 강아지를 데려와서 담당수의사에게 “우리 예림이(강아지 이름)가 아니면 내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할 사람이 없습니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꼭 좀 고쳐주십시오”라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자식들은 장성해 다 떠나고 부인은 동생의 식당일을 돕느라고 따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강아지 예림이만이 노인의 고독감을 달래줄 유일한 존재였다.

3층 옥상에서 고양이와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심하게 부상당한 고양이를 데리고 온 A씨. 고양이는 코뼈와 함께 두개골이 함몰되는 등 위중한 상태였다. 1차 검진 결과 도저히 회복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안락사를 권유하자 거의 통곡수준의 슬픔을 토해내던 A씨는 “못 걸어도 좋습니다. 숨만 쉬더라도 살아있게만 해 주십시오”라며 치료를 간청했다. A씨의 애절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필요한 처치를 하기 시작했지만 고양이는 얼마 안가 A씨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하던 반려동물이 사고나 질병으로 죽거나 잃어버리는 경우 보호자가 겪는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과 고통으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상당기간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심리적인 상태에 빠지는 펫로스증후군이 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애완동물을 떠나보내면서도 겪고 있는 것이다.

허찬 스마트동물병원 원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