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법정으로 번진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은
과장된 위험성에 집단불안이 증폭된 예
생리대서 방출된 발암물질의 독성 양은
극소량에 해당하고 안전성 입증 어려워
      
식약처의 늑장 부실 대응이 사태 키워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불안 확산되기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설득방법 찾았어야

순환기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자문 의뢰하였다. 중년의 직장인이 가슴 통증과 두근거림 때문에 정밀검사를 하였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내과 의사는 심리적 원인으로 판단하고 항불안제를 소량 투여하였는데 환자는 오히려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환자에게 증상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신체 증상이 심한데도 검사 결과 정상이라고 하니, 환자는 의사의 말이 신뢰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항불안제를 준다니 더 걱정되었다. ‘정신과 약은 위험하고 중독된다던데. 이제 평생 정신과 약을 먹고 살아야 하나.’ 마지못해 약을 복용하였지만 신경은 오히려 날카로워지고 호흡과 맥박과 진땀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역시 내 걱정이 맞았어.’ 그 순간 두려움이 극심해지면서 숨차고 두근거리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처럼 미리 염려하던 증상이 심리적 원인에 의해 실제로 생기는 것을 ‘노시보 효과’라고 한다. 기대했던 약의 효과가 가짜 약에도 나타나는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 개념이다. 위의 환자는 항불안제의 효과보다 노시보 효과가 더 강력하여 항불안제가 불안촉진제로 작용하였다. 다행히도 환자는 지나친 걱정을 깨닫고 편해지면서 증상도 호전되었다.

노시보 효과는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현대에는 독성 화학 물질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한번 사건이 발생하면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곤 한다. 미디어가 불안을 증폭시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증상의 원인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정책 당국의 시기적절한 대응이 꼭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은 최근에 법정싸움으로 비화되었다. 각계 전문가의 견해도 달라서 많은 여성과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당장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가족과 환자를 돕기 위해 나는 관련 자료 조사 검토 후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생리대 유해물질의 위험성은 과장되었으며, 지금 식약처가 계획하는 정밀한 검사로도 안전성을 입증하기란 극히 어렵다.”

이번에 공개된 강원대 김만구 교수의 실험 결과를 보면 검사한 일회용 생리대 5가지 모두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되었고, 그 중에는 발암물질도 있었다. 그러나 단지 검출되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물질들은 우리 주변 공기 중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밀폐된 작은 공간에 고농도로 존재한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다. 문제는 그 양이다. 과연 건강에 위험한 양인지 계산해보자. 실험의 엄밀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는 실험결과가 정확하다고 가정하였다. 칼럼에서 이런 계산까지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문제를 이해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계산이 복잡하게 여겨지는 독자께서는 결론으로 건너뛰셔도 된다.)

일회용 생리대 중에서는 개당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최대 6500ng(나노그램, 십억분의 1그램) 방출되었다. 얼핏 보면 엄청 큰 숫자 같지만 단위를 바꾸면 6.5㎍(마이크로그램, 백만분의 1g)이다. 다중이용시설 실내 공기 중 기준은 500㎍/㎥이다. 이러한 실내에서 호흡을 하면 약 2분 동안에 이 만큼의 유기화합물을 흡입한다. 피부를 통한 흡수는 호흡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을 고려하면, 실제 생리대 1개로부터 흡수하는 유기화합물은 허용기준 범위의 실내에서 수 초간 흡입한 양으로 추정된다. 언론에 제시되었기에 굳이 계산하였지만, 휘발성 유기화합물 총량은 그 성분 비율이 검사 대상마다 달라서 서로 비교할 수 없고, 건강과 관련하여 과학적 기준치가 없으므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려면 각각의 성분을 비교하여야 한다.

이번에는 1급 발암물질이자 생식독성 물질인 벤젠을 살펴보자. 벤젠은 5개 생리대 중에 2개에서만 각각 1ng씩 방출되었다. 벤젠은 공기와 물에 존재하며 나라마다 흡입과 섭취량이 다른데 캐나다인의 경우 하루 200㎍정도를 흡수한다. 벤젠 1ng을 피부에서 모두 흡수한다고 가정해도 이는 통상 하루 흡수량의 20만분의 1에 해당된다. 미국 환경보건국의 음료수 벤젠 최대 허용 기준은 리터당 5000ng이다. 이번에 검출된 다른 발암물질도 모두 음료수 리터당 최대 허용량에 비해 수천분의 일 이하로서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

결론적으로 생리대에서 방출된 발암물질의 양은 우리가 매일 흡입하고 섭취하는 양보다 수천 내지 수십만 분의 일에 불과하므로 이로 인해 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사태를 키운 것은 식약처의 늑장 부실 대응 탓이 크다. 일단 독성 물질 위험성이 제기되면 그 임상적 의미부터 검토하여야 한다.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불안이 커지기 전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수수방관하다가 이제 와서 생리대 전수를 냉동 분쇄해서 성분을 검사 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결과가 나온들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페트병에 유해물질이 검출된다고 페트병을 갈아서 검사하는 격이다. 첨단 기술을 내세우기보다 상식과 균형 잡힌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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