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아신왕이 진무장군에게 말했다.

“나는 백제군을 동원해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겠다고 이사품왕과 약조를 맺고 왔다네. 대가야를 쳐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약조를 어기고 이사품왕을 배신하는 것이야.”

“대왕마마, 국가 간 약조라는 것은 힘이 강한 쪽은 힘이 약한 쪽에게 언제든 어겨도 좋다는 것 아닙니까? 눈엣가시인 고상지를 제거하고 대가야를 먹는 것은 이사품왕으로서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오호, 역시 진무장군이야. 장군으로서의 전술을 그렇게 가져가야지.”

아신왕은 진무장군이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장군의 전술과 왕의 전략은 다르다. 장군은 전투에서 이겨서 전리품을 얻어야 하고 왕은 작은 전투에서 지더라도 큰 틀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아신왕은 야망이 있었다. 그는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밤에 신비로운 빛이 나타나 그의 방을 밝게 비추었다. 아신왕은 그 빛이 백제를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번성시킨 근초고왕의 빛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그는 근초고왕을 존경하고 사숙하였으며 반드시 근초고왕이 정복했던 대제국의 고토를 회복하리라고 다짐했다.

아신의 부왕은 백제에서 최초로 불교를 공인한 침류왕이었다. 침류왕은 죽기 한 해 전인 384년, 동진에서 온 서역승 마라난타를 궁궐 안에 모시고 예경했고, 한산주에 불사를 창건하고 승려 열 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침류왕은 죽기 전 어린 태자 아신을 염려해 동생인 진사에게 보필을 부탁했다. 하지만 침류왕이 죽자 숙부 진사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아신을 나라 밖인 대가야로 쫓아버렸다. 아신은 대가야의 회령왕 밑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와신상담했다. 진사왕은 초기에는 국정을 개혁하고 고구려군과 싸워 이겨 백제의 옛고토를 회복하며 명군주로 백성의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여색과 안일에 빠져 정사를 멀리하고 고구려에게 기존의 백제 땅마저 빼앗겨버렸다. 말년에는 용병술의 귀재인 광개토왕을 두려워하여 아예 그와의 전투를 회피하였다.

진사왕 8년(392년), 아신은 숙부 진사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돌아와 구원의 행궁에서 술과 여색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시탐탐 숙부를 노리고 있던 아신은 지금이야말로 왕권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신은 외숙부 진무와 이복동생 부여홍과 손잡고 구원의 행궁을 공격해 진사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아신왕이 진무와 함께 망루에서 내려오려는데 내신좌평 부여홍이 급히 올라와 보고했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가야군이 왜의 용병과 함께 신라로 쳐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신왕은 전쟁발발의 소식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전쟁은 가야와 신라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 광개토와의 싸움이다. 한반도의 사국통일을 누가 먼저 이루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전쟁이다. 만약 신라 땅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고구려군만 잡는다면 내가 사국통일을 이루는 최초의 군주가 될 것이다.’

 

우리말 어원연구

밝다. 【S】valgada(발가다), bright. ‘밝다’의 받침 ‘ㄹ’ ‘ㄱ’은 ‘l’ ‘g’에서 유래하고 ‘v’는 동국정운에 ‘밝다’의 초성인 순경음 ‘ㅸ’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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