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문제행동을 대할 때마다
삶을 사랑할 환경의 중요성 느껴
이 가을 풍요로운 삶에대한 성찰을

▲ 강혜경 경성대학교 가정학 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고 긴팔 옷을 찾게 된다. 출퇴근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드높게 푸르고 뭉게구름이 둥실거린다. 뭉게구름을 보니, 몇 년 전 강릉으로 워크숍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유난히 맑고 청명한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풍성한 날이었다. 재치 넘치는 선배가 뭉게구름을 보며, “오늘 내가 저 뭉게구름 곱게 걷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푹신한 이부자리를 만들어 줄께. 모두 그 이부자리에서 행복한 꿈꾸고 푹 쉬세요!” 워킹 맘으로 바쁘고 힘들었던 그때, 선배의 따뜻하고 정감어린 그 말이 무척이나 위로가 되었었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고 그립다.

나뭇잎에 색이 물들고 고적한 바람에 가을이 온다. 자꾸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가을, 그리움에 외로움이 스며들고 어디로 떠나고 싶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영화를 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어쩜 자기 내면을 탐색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로뎅은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이다”라고 했다. 가을, 그렇게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며 매력적으로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높아가는 청소년 자살률과 학교폭력 등 일련의 기사를 접하며 깊은 우려와 반성을 하게 된다. 많은 연구결과는 청소년기 폭력과 문제행동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결과이며, 만 5세까지의 성장경험이 애정결핍 여부의 결정적 시기로 보고 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만5세까지 양육자와의 관계가 청소년기와 이후 인생 전반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사랑받아 본 경험, 그 따뜻함이 결국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는 거다.

올봄 울산 청소년 자살사건과 최근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을 접하며, 그 심각한 폭력성에 소년법 개정 등의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의 현실적 필요성도 있지만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적 환경과 경험이 인간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유명한 카우아이섬 사례를 살펴보면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극복의 힘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음을 보고했다. 1955년 이후 계속된 일생 추적연구에서 긍정적이고 역경을 이겨낸 아이들은 소통하고 존중받는 경험, 즉 그들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명은 있었다는 거다. 중요한 시사점은 청소년 범죄자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족, 친구, 이웃 그 누구라도 한사람으로 부터의 신뢰와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아이들 스스로 좋은 나무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양질의 토양과 곧은 숲에서 정정한 나무가 자라기 때문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 미국)‘를 보면 명문 사립학교에 부임한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이 제자들을 향해 외쳤던 “누구도 아닌 자기의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가 없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 간에, 자기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라“는 명대사가 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매혹적인 삶을 살고 싶다. 청소년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즐기도록 사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첫걸음은 사회의 성인으로 청소년 그들이 마주한 어려움과 아픔을 물어주고 들어주며, 오늘도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한사람의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다.

보니 프리드먼은 “시간에 대한 느긋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풍요의 한 형태다”고 했다. 시간의 흐름을, 계절의 변화를 일상의 삶에서 느끼고 있는지? 부자가 아니어도 성공이 아니어도 나다운, 나답게 살아보고 싶은 풍요로운 삶을 꿈꾸고 있는지? 어느새 여름가고 가을, 내면을 탐색하는 시간, 지금 그 자리에서 자꾸만 물어보게 된다.

강혜경 경성대학교 가정학 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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