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을 잘못 묶은 후로 남자는 아랫배가 자주 아프다 옻칠이 벗겨진 찬합을 열면서 여자는 월부금을 부어서라도 카메라를 한 대 사고 싶어한다 가족이 앉은 돗자리 위로 청룡열차 선로가 만든 그늘이 옥(獄)의 창살처럼 내린다 아이들은 김밥에 우엉 대신 게맛살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검고 푸른 서로의 입안으로 김밥을 밀어넣어줄 때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 엄계옥 시인

가난만은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가장이 있었다. 일생을 개밥바라기별이 돋을 때까지 일을 했다. 그로부터 오십년, 밥 먹는 일은 나아졌지만 형편은 매한가지다. 한평생 열심히 일했으니 노후는 편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쪼들린다. 빵은 열 개 뿐인데 최상위 3%와 상위 17%의 사람들이 여섯 개를 가져가고, 나머지 80%의 사람들이 빵 네 개를 두고 경쟁해야 하니 서로 먹이 앞에서 으르렁거릴 수밖에. 이 시는 가난한 가족의 나들이 광경을 보여준다. 아내는 월부로라도 카메라를 사고 싶지만 그들에게 가난은 탈출구 없는 감옥이 되었다. 머리 위에서 청룡열차가 날 때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그 아래서 김밥을 먹는 아이들이 우엉 대신 게맛살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꾼 때문이다. 온 나라가 정관이 묶였는데도 제 밥그릇 크기에만 몰두하는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서로 입안으로 밀어 넣어주는 광경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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