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는 지역민부터 즐길 수 있어야
시민정서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위해
치열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지난 15일 태화강대공원. 아름다운 무대가 세워졌다. 때마침 서쪽 하늘의 석양도 멋졌다. 음악은 바람과 함께 가을을 실어 날랐다. 처용문화제에서 독립한 월드뮤직페스티벌이 첫 선을 보인 날이다. 유감스럽게도 객석은 헐렁했다. 의자가 없는 스탠딩 음악회였지만 관객은 그저 바라볼 뿐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다. 둘째·셋째날엔 비가 내려 더 순조롭지 못했다. 첫술에 배부르랴만 역시나 2% 아니, 그 이상 부족했다.

월드뮤직페스티벌을 덜어낸 처용문화제는 10월14~15일 태화강대공원에서 열린다. ‘처용, 희망을 부르다’라는 슬로건처럼 희망이 보일는지, 예고된 프로그램을 보자. 학술심포지엄, 처용무보존회 울산최초 공연, 처용설화 웹툰·처용항 역사VR 소개. 한국민속예술축제 구군 대표선발 경연, 구·군 민속놀이….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는 축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답은 ‘글쎄’다. 전문강소축제를 지향한다고 했던가. 축제에서 ‘전문(專門)’이나 ‘소(小)’는 ‘강(强)’에 방점(傍點)이 찍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도시 브랜드가 될 만한 대표축제는 울산의 오랜 염원이다. 처용문화제가 형식상 대표축제일 뿐 시민들의 자긍심이 되지는 못한다. 새로운 관광형 축제에 대한 열망에서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인 처용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애정까지. 시중엔 백인백색(百人百色) 말만 수십년째 무성하다. 올해부터 나누어진 월드뮤직페스티벌과 처용문화제에 이 두 가지 기대감을 대입한다면? 섣부른 단언인지 몰라도 올해는 물리적 분리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초 출범한 울산문화재단이 몇개월만에 두개의 축제를 성공적으로 만들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너무 서둘렀다. 성공한 문화상품이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고 해서 치열한 고민의 과정 없이 하루아침에 ‘금 나와라 뚝딱’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올해까진 예전에 하던대로 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분리할 준비를 했어야 했다.

지역축제의 성공은 지역민들이 스스로 즐기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축제이론>에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대한 규모의 상품화한 스펙타클에 대한 관심이 점차 작은 마을단위의 소박한 축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두 축제를 분리하든, 새로운 축제를 기획하든 먼저 시민정서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관광효과는 그 결과로서 나타난다. 울산문화재단이 아무리 전문가 집단이라고 해도 그 과정을 건너뛰려 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분리 개최’에 만족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50여년 된 처용문화제, 10여년 된 월드뮤직페스티벌에 대한 시민정서는 무언가. 처용문화제는 모호하고 심각하다. 역사성도 정체성도 내재돼 있지 않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횟수만 늘려놓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올해 프로그램처럼 처용관련 행사만 나열한다고 해서 모호함이 극복되고 정체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남구청에 넘기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준비 기간이 짧았던 탓인지 상상력도 기획력도 빈약해 보인다. 월드뮤직페스티벌은 어렵고 낯설다. 이질감과 거리감도 있다. 게다가 올해는 ‘에이팜×월드뮤직페스티벌’이라니. 타이틀부터 심란하다. 어려우면 수준이 높은가. 수준이 높으면 어려운가. 단언컨대 문화에 있어서는 둘 다 아니다.

특히나 페스티벌이라면 재미있고 단순하고 명확하게 주제를 드러냄으로써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기고 감동해야 한다. 지평선축제, 나비축제, 머드축제, 산천어축제 등 성공한 축제가 모두 그렇다. “상상력의 환상을 자극하며, 영혼을 흔들고, 일상적인 삶의 무기력에서 우리를 일깨우는 씨를 뿌리게 하는”(<축제이론>) 축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치열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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