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산치령에 매복한 신라군사들이 영마루로 바쁘게 올라오는 김품지와 가야병사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라의 김품지 장군은 마갑을 두른 백마를 타고 번쩍이는 환두대도를 높이 쳐들고 산치령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화랑 월풍이 김계림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저놈, 김품지의 목은 제가 베겠습니다.”

“왜인가?”

“어제 가야군에게 목이 베인 삽라국의 장수가 저의 동복 형입니다. 저놈을 죽여 가문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습니다.”

월풍이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며 말했다. 동복 형은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간이었다.

김계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월풍, 고작 동복 형이란 말인가. 어제 김품지에게 효수된 삽라의 주수는 나의 친형이네. 놈들이 우리 형의 목을 장대에 꿰어 성문에 걸어 두고 짐승 같은 모욕을 가했지. 김품지의 목은 반드시 내가 베겠네.”

김계림의 눈가에 이슬이 잔잔히 맺혀 있었다. 화랑 월풍은 계림장군의 말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월풍은 여전히 분을 삼키지 못하며 말했다.

“가야 놈들은 정말 간사한 놈들입니다. 종자도 말도 다른 간악한 왜놈과는 찰떡같이 손잡고 같은 김씨이고 골육지친인 우리 신라는 늘 배척하고 전쟁을 하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월풍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애당초 김수로왕과 김알지왕은 흉노왕자 김일제의 8세손으로 한 형제였다. 중국에서 같은 시기에 내려온 두 형제는 각각 금관과 금성에서 가야과 신라를 건국하고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냈으나 어느 순간부터 가야가 왜를 끌어들여 해상주도권과 철산지, 곡창지대를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분쟁과 전쟁을 벌었다.

김계림이 월풍에게 말했다.

“왜놈만 안 끌어들여도 덜 미울 텐데. 비록 오래 전의 일이지만 우리 신라가 절멸 위기에 놓인 가야를 구해준 일도 있었는데 말이야.”

포상팔국의 난 때 해상 8개국이 연합해 금관가야를 공격했다. 백제와 왜까지 포함한 포상팔국군은 가야군사 5천명을 포로로 잡고 금관가야를 점령했다. 가야왕은 왕궁을 버리고 신라 금성까지 도망을 와 도움을 요청했다. 신라의 나해 이사금왕은 6부의 군대를 보내 포상팔국군을 쳐서 금관가야를 되찾아 주었지만 이들 8국의 난을 완전히 진압하는데 무려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월풍이 계림장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속담은 이걸 두고 말합니다. 골육지친의 정과 혈맹의 은혜도 모르고 저 가야놈들을 지금 당장 제가 찢어발기겠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삽라국: 현재 경남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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