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계림장군은 흥분한 월풍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전쟁은 사적인 보복과 분노로 하는 것이 아니야. 촉의 유비가 오나라에 의해 관우가 죽자 사감으로 오나라를 응징하려다가 되레 망한 사실을 모르는가. 일단 가야군의 선두를 지나보내고 놈들의 후미가 산치재에 완전히 들어왔을 때 공격한다. 알겠는가?”

“예!”

월풍은 분노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삽라군을 낙동강에 수장시키고 승리감에 도취한 김품지는 빨리 산치재를 넘고 태화강을 건너 우시산국의 달천 철장을 점령하고 싶었다.

그는 막 전투를 치러 피곤한 가야군사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독촉했다.

“뭣들 하느냐. 신라의 졸개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이 영마루를 넘어야 한다. 빨리 빨리 행군하라!”

가야군의 마지막 후미대열마저 산치고개로 완전히 접어들자 백마를 탄 계림장군이 칼을 빼어들고 소리쳤다.

“공격하라! 왜놈들과 왜놈들의 하수인인, 가야놈들을 진멸하라!”

산치재 양언덕에 깊숙이 매복해 있던 신라 병사들이 계림장군의 신호에 맞춰 일거에 뛰쳐나와 활을 쏘고 창으로 찔러댔다. 장군의 독촉에 빠른 걸음으로 산치고개를 오르다 지친 가야병사들은 철갑옷을 벗어 말에 걸치고 무기마저 수레에 실은 형국이었다. 무방비상태로 불시에 매복공격을 당한 가야군사들은 물벼락을 맞은 개미행렬처럼 쓰러져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검은 가라말을 탄 계림장군은 용천검을 빼어들고 김품지 장군을 향해 달려 나갔다. 용천검은 달천 철장에서 백 번을 벼린 강철보검이다. 칼날 위로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잘라질 정도로 예리하지만 쇠막대기와 부딪쳐도 이가 상하지 않는 강한 검이다.

백마를 탄 김품지 장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적의 매복에 걸렸다. 다시 곰마을로 후퇴하라!”

김품지 장군은 긴 사모창을 꼬나들고 달려오는 계림장군의 목을 꿰려 덤벼들었다. 장 구척인 이 사모창으로 삽라국 주수의 목을 단번에 산적처럼 꿰어버렸다. 달려오던 계림장군이 아슬아슬하게 김품지의 창끝을 피하며 용천검으로 내려치자 사모창의 목이 뎅겅 날아갔다. 사모창을 버린 김품지는 이번엔 무거운 철퇴를 들고 계림장군의 머리 위로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철퇴는 방패와 갑옷과 뼈를 통째로 부숴버리는 위력적인 무기였다. 계림장군의 용천검이 허공에 번뜩이자 철퇴 줄이 툭 끊어졌다. 철퇴는 가야군의 머리통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무기를 잃은 김품지는 분한 표정을 짓더니 말머리를 돌려 재 아래 곰마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을 죽인 놈! 넌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계림장군은 철맥궁에 쇠냇대를 장착해 턱밑까지 당겼다. 천보나 나가는 철맥궁은 계림장군에게 가보로 대물림된 것이다. 김품지의 목을 겨냥한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우리말 어원연구

빨리. 【S】pali, pari (팔리, 파리), quickly. ‘팔리’는 ‘청정’ ‘정화’라는 뜻도 있다. 빨래는 빨리에서 갈라져 나온 용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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