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완전파괴’ 등 파격적 유엔 연설에 외신들 충격·비판·우려

▲ 트럼프, 유엔총회 연설(PG)

미국우선주의 강조에 “전통과의 단절, 현실정치·국수주의 복귀”
실제 무력행사 가능성에는 “이라크 침공했던 부시 연설과는 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유엔 연설에 외신들이 강한 어조로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 완전파괴’부터 이란 핵합의 파기 경고,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 천명 등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의 리더로는 유례가 없는 공식 발언에 ‘트럼프주의’(Trumpism)가 미국을 넘어 세계 질서를 새롭게 형성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날 대북 언급은 ‘화염과 분노’, ‘대북해법 장전’, ‘심판의 날’ 등의 기존 강경 발언보다 수위가 한층 높아진 데다 세계 최대의 다자외교 무대에서 공식으로 내놨다는 점에 미 언론이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트위터나 기자들과의 짧은 문답 과정에서 다소 즉흥적으로 나온 앞선 대북 발언들과는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화염과 분노’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북 정권 제거에 대한 위협이었다면, ‘완전파괴’는 북한의 2500만 주민의 생명까지도 김정은과 함께 절멸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문은 “핵무기든 재래식 수단이든 간에 북한 전체를 쓸어버리겠다는 전례 없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며 “이는 엄청난 표현으로 백악관이 해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도중 얼굴을 감싼 존 켈리 비서실장(윗줄 맨 왼쪽). 아랫줄 왼쪽은 영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

WP는 다른 관련 기사에서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깡패 두목(a mob boss)처럼 들린 연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면서 “영화 ’언터처블‘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지 않은 알 카포네 역의 로버트 드니로를 생각하면 된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청중에 자신이 얼마나 터프한지를 보여주려는 근육자랑과 같았다는 평이다.

그러면서 ‘북한 완전파괴’ 발언을 가리켜 “강경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유치한 욕설로 가득 찬 어린 학생의 왕따 만들기”라고 조롱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의 유엔 연설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그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트럼프가 인류를 여러 번 전멸시키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통제한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그의 화려한 언어는 심지어 웃기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미사일 말고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기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엔은 지금까지 트럼프의 데뷔 연설과 같은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며 “역사상 어떤 미국 대통령도 상대국에 이처럼 갈등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파괴‘ 발언을 할 때 다른 유엔 회의장에서 국제 외교 정책을 논의하던 외교관들이 당황하면서 매우 놀라워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발언이 김정은과 말 전쟁을 초래했던 ‘화염과 분노’ 표현과 마찬가지로 “도가 지나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연설을 듣던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난감해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외신들은 충격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이번 연설이 즉흥 발언이 아니라 사전에 준비한 원고에 기초했다는 점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WP는 “이번 발언은 미리 준비한 연설을 통해서 나왔다”고 지적했고, FT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정책보좌관이 원고를 썼다고 전했다.

밀러 보좌관은 최근 물러난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함께 우파 정책을 설계하는 인물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외교무대에서 김정은을 또다시 ‘로켓맨’이라고 지칭한 데 주목하면서 이 표현은 연설 직전 원고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기조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는 데 주목하는 시각도 많다.

▲ 유엔 정상들과의 오찬에서 건배 제의하는 트럼프 대통령.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의 연설은 미국의 외교정책이 현실정치(realpolitik)로 복귀했음을 나타낸 것”이라며 트럼프식 현실정치를 “철학이나 도덕적 계산보다는 실용적인 고려에 기초한 원칙과 수칙”이라고 규정했다.

WSJ는 “트럼프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결과가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선언했다”면서 “트럼프의 메시지는 세계화 시대에도 국가와 국경은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연설은 과거 미국의 대통령들이 위협에 맞서기 위해 국제적 동맹을 주도하려고 노력해왔던 지난 70년과의 단절”이라며 “연설과 더불어 정책이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은 또 다른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CNN은 “이날 연설은 ’글로벌 트럼프주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반(反)세계주의자의 분노를 일관된 국제 이론으로 주조해냈다”며 “경제적 국수주의가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돼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 방송은 “전임 오바마 정부의 ’공손한‘ 다자주의와 단절한 여러 면에서 획기적인 연설”이라는 헤리티지재단 나일 가디너 연구원의 언급을 소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연설은 결국 국제정치가 아닌 국내정치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게 공통적인 분석이다.

FT는 “연설의 주요 청중은 트럼프의 국내 지지기반”이라고 했고,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의 연단에서 그의 대안우파(alt-right) 및 반(反)세계주의자 지지층에게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권’을 거듭 강조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얼마든지 자국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초강경 대북 발언과 달리 실제로 전쟁에 무게를 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폴리티코는 “몇 달 뒤 실제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2002년 유엔 연설과 유사한 슬로건은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북한을 파괴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협은 단지 수십 년 된 미국의 선언적 정책을 좀 더 직설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북한의 제거는 단지 미국이 그 자신 또는 동맹을 보호해야 할 경우에만 일어난다고 선을 그었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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