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소영 날씨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기상청에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기준은 다르다. ‘올 가을이 빨리 왔다’ 또는 ‘올 가을이 늦게 왔다’라고 말하는 것은 감각적인 판단이 아니라 8월의 기온에 따라 달라진다. 8월의 월평균 기온이 평년(30년 평균)보다 높으면 가을이 늦게 왔다고 하고, 낮으면 가을이 빨리 찾아왔다고 한다.

곤충들의 작은 변화로도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 짙어짐을 알리는 곤충이 매미라면, 가을을 알리는 곤충은 귀뚜라미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는 ‘귀뚜라미는 가난한 사람의 온도계’라는 속담이 있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바탕으로 주변온도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학자 아모스 돌베어는 1897년 학술지 <아메리칸 내처럴리스트>에 ‘온도계 구실을 하는 귀뚜라미’란 논문을 통해 일명, ‘돌베어 법칙’을 만들어 냈다. 종마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긴 꼬리 귀뚜라미가 온도계 귀뚜라미인데, 14초 동안 우는 횟수에 40을 더하면 화씨온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4초 동안 귀뚜라미가 35회 울었다면 화씨온도는 75℃이고 이것을 섭씨로 따지면 24℃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귀뚜라미는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날개를 들어 양쪽 날개를 마찰시키면서 내게 되는데, 온도가 높아질수록 빈도가 더 높아진다. 날개를 비빌 때 귀뚜라미의 근육이 수축하는데, 온도가 오를수록 반응이 더 빨리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로 실제 귀뚜라미는 24℃ 안팎일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귀뚜라미를 날이 추워지니 빨리 베를 짜라고 재촉하듯 우는 벌레란 뜻으로 ‘촉직(促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 역시 귀뚜라미를 영리한 곤충이라고 여겼는데, 아직 더운 감이 남아있는 음력 7월에 귀뚜라미만큼은 어김없이 나타나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가을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결코 역행하지 않는 작은 곤충들을 통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가을공기의 서늘함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날씨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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