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기재 내용 피압수자에게 충분히 고지해야” 첫 판례

▲ 대법원.

정상혁 보은군수 선거법 위반 상고심 벌금 90만 원 확정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은 검찰과 정 군수 모두 항소심에 불복해 상고한 지 2년 1개월 만에 나왔다.

외견상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는 사건의 상고심 판결을 내리기까지 무려 2년 1개월이나 소요되면서 지역 정가에서는 별의별 억측과 소문이 무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은 오래 걸려도 6∼7개월이면 결론이 나던 것과 비교하면 2년을 훌쩍 넘긴 정 군수 상고심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상고심 판결 결과를 살펴보면 대법원이 중대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사건에 ‘장고’를 거듭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사건 상고심 결과와 관련, 검찰이나 정 군수, 지역 정가의 초미의 관심사는 정 군수가 과연 직위를 유지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지만 대법원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대법원은 정 군수에게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지었지만 이번 판결의 방점은 관행으로 여겨졌던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에 경종을 울리는 데 찍었다.

압수수색에 나선 수사기관은 영장에 담긴 내용을 피압수자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 이 사건 판결문의 핵심이다.

피압수자의 권리 보호를 명문화한 대법원 판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피압수자의 권리 보호를 담아내기 위해 대법원은 2년 1개월을 고민한 것이다.

쟁점이 됐던 보은군청 비서실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때는 2014년 5월 22일이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이날 청주지법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을 지참, 비서실을 찾아 정 군수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할 증거 확보에 나섰다.

당시 비서실 관계자가 압수수색 영장 내용을 확인하려 했으나 경찰은 이를 제지했다.

영장 첫 페이지와 정 군수의 혐의 내용만 보여줬을 뿐 압수수색 대상 물건과 장소, 압수수색 필요 사유, 영장 담당 판사가 제시한 압수수색 방법 등이 기재된 부분을 확인하는 것은 막았다.

경찰은 압수한 휴대전화 통화 명세와 문자메시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송수신 내용, 사진·문서 파일 등을 출력하는 과정에서도 비서실 관계자를 부르지 않았다.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무시한 셈이다.

보은군에는 압수한 전자 정보 목록도 알려주지 않았다.

압수일로부터 10일 이내에 휴대전화를 반환하라는 영장 내용도 무시하고 보름이 지나서야 돌려줬다.

검찰은 이렇게 법을 준수하지 않고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정 군수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대법원은 이번에 관행처럼 이뤄지던 이런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1부(주심 김 신 대법관)는 “피압수자가 압수수색 영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게 한 것은 ‘적합한 압수수색영장의 제시’라고 볼 수 없고 이 영장에 따라 압수된 휴대전화 역시 적법 절차에 따라 수집된 증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휴대전화에서 증거를 수집하면서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압수된 전자정보 목록을 작성해 교부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10일 이내에 반환하지 않은 것 역시 적법한 절차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례는 수사기관이 피압수자에게 단순히 영장을 보여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영장 기재 사항을 충분히 알리는 조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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