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하늘의 관문(關門) 울산공항

▲ 울산공항의 전경들.

일제강점기 본토와 가까운 울산에
日-韓-中 연결 정기항공노선 개설
1941년 군사비행장으로 개조했다가
해방후 축소…삼산 비행장은 사라져

울산시, 10월 울산~제주 취항 앞두고
KTX 연계상품 등 관광마케팅 추진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상품 계획중
사통팔달 도시 국제항공 취항도 기대

쾌청한 오후. 차는 북부순환도로 한국폴리텍대학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여름 내 후텁지근한 무더위 속에서 좀처럼 푸른색을 내보이지 않던 하늘이 9월로 접어들자 청명한 빛깔을 연일 드러내고 있다. 한낮의 기온은 철모르는 더위를 여전히 붙잡고 있으나, 가을은 이미 하늘을 통해 우리들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을 어떡하랴!

코발트빛 하늘로 향했던 시선을 동천(洞川)의 희고 고운 모래톱으로 옮기려는 즈음에 눈앞에 펼쳐지는 아주 놀라운 광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너비와 길이가 약 40m에 육박하는 거대한 비행기가 착륙활주로를 향해 북부순환도로 위를 가로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손 내밀면 마치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에 비행기의 육중한 동체가 눈앞을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순간 ‘와’하는 어린아이 같은 탄성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도로위로는 자동차가 질주하고, 그 자동차 위로 불과 몇 미터 간격을 두고 비행기가 날고 있는 광경은, 결코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곧 이어 활주로에 가뿐하게 내려앉는 비행기의 모습과 함께 공항의 상징인 관제탑이 눈에 들어왔다. 울산으로 들어오는 하늘의 관문 ‘울산공항’이다.

공항청사로 들어섰다. 항공사의 카운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행기 여행의 시작은 항공사 카운터를 찾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까닭이어서일까? 잠깐 들뜬 기분이 된다. 미리 만남을 약속했던 공항관계자와 함께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터미널 2층으로 올라서자 출발수속장이 나타난다.

 

수속장을 거쳐 탑승게이트 앞으로 들어서자 총 91만9977㎡의 부지와 2000m(폭 45m) 길이의 활주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활주로는 연간 6만여 회의 항공기 운항을 처리할 수 있으며, 또한 여객터미널은 연간 240만 명의 여객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 밖에 항공기 4대가 동시에 머무를 수 있는 3만3605㎡의 계류장과 차량 533대가 한꺼번에 주차할 수 있는 2만6860㎡의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어, 공항 이용객의 편리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건립되었다는 공항관계자의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또한 울산공항은 울산시가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된 후 왕래객이 급증하자, 이에 따른 교통 불편 해소를 위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9년에 공사가 시작되고, 1970년에 처음으로 서울로 향하는 항공편이 취항하였으나 1971년에 고속버스 노선이 개설되자 이용객이 감소해 한때 폐쇄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4년에 여객기 운행이 재개되었고 그 후 공항 활성화가 크게 이뤄졌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11월 1일에 KTX 울산역이 개통되면서 고속열차 쪽으로 수요가 크게 분산되어 현재는 공항 이용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전해주는 공항관계자의 표정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역력해 보인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울산공항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비행장이었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 울산공항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 1970년대 울산 비행장 전경.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일제는 일본 본토와 조선,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정기항공노선의 개설을 계획, 추진한다. 이로 인해 비행장 개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우리나라에서 일본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점 두 곳을 선정하는데, 한 곳은 부산이며 또 한 곳은 울산이었다. 하지만 부산은 요새지역이라 하여 민간비행장 건설이 여의치 않자, 해안에 위치하며 부산에서도 가까운 울산을 선택하여 울산군 울산읍 삼산리(현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에 울산비행장(蔚山飛行場)을 건설한다. 이때가 1928년 12월2일이었으며, 이는 여의도 비행장 건립과 비슷한 시기였지만, 실제로는 몇개월가량 빠른 것이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이로써 울산비행장은 우리나라에 들어선 최초의 민간비행장이 된 것이었다.

이날 비행장 개항식이 열리자 평양비행연대의 정찰기 3대가 날아와 울산 공중에서 에어쇼를 펼치며 축하비행을 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개장식에는 울산을 비롯하여 인근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의 울산비행장에 대한 관심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1931년 만주사변 발발 후에 비행장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졌고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울산비행장의 민간기능은 대구 동촌비행장으로 옮겨가고, 1941년에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군사 비행장으로 개조하게 된다. 이는 일본 오사카나 후쿠오카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처음 급유 하는 곳이 울산이었기 때문에 울산비행장은 대륙으로 가는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삼산에서 이륙한 전폭기가 서울, 평양, 신의주를 거쳐 중국 대련으로 날아 간 뒤 북경, 남경 폭격에 참가 했는데,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15일까지 상당수의 일본군이 울산지역에 남아 있었던 것도 이 비행장 수비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1945년에 해방이 된 후에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관리하다가 유사시를 대비해 일부만을 활주로로 남기고 나머지는 논으로 용도를 변경하여 농민에게 매각하였고, 그 후 울산 도시계획 확장으로 인해 주거 단지로 바뀌면서 울산(삼산)비행장은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비행장인 삼산의 울산비행장은 현재의 울산공항으로 재탄생하여 지금의 이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대식 공항 터미널 곳곳에 쌓이고 쌓인 시간의 내음 같은 것이 느껴졌던 이유가 비로소 말끔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 홍중표 자유기고가 (전)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울산시는 오는 10월 제주항공의 울산-제주 취항을 앞두고, 울산공항 시범운항과 관련해 관광마케팅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 방안의 일환으로 KTX와 연계해 울산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을 개발 중이라고 하는데, 먼저 제주지역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수학여행 상품을 만들어 울산을 찾도록 한다는 계획으로, 울산 제주 노선에 활성화는 물론 자연스레 지역을 찾는 관광객 수요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17일 이와 관련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는 소식과 함께 에어부산도 취항을 고려중이라는 반가운 소식 또한 들린다. 하늘의 관문인 울산공항을 오고가는 항공기의 운항이 지금보다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크게 활성화된다면, 머지않아 국제 항공의 취항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으리라.

땅위의 길은 물론이요 바다위의 뱃길과 함께 하늘의 길도 활짝 열리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울산을 기대하면서 활주로를 바라다보았다. 활주로에는 막 승객을 태우고 화물을 실은 200t 가까운 무게의 비행기가 창공을 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엔진의 굉음을 내뿜으며 푸른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오늘도 공항활주로에는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또 다른 비행기가 이륙을 한다. 여기는 울산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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