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국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가결정족수보다 10표를 더 얻어 통과되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헌법재판소 직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등한 지위의 최고 사법기관임에도 수장 교체기에 업무 차질이 없도록 적시에 차기 원장이 확정된 대법원과 무려 8개월 동안 소장 공백이 이어지는 헌재의 현실이 비교돼서다.

23일 헌재 안팎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소장의 퇴임 이후 헌재 소장 자리는 235일째 빈자리인 상태다. 김이수 권한대행의 낙마 이후 아직 다음 소장 후보자도 정해지지 않아 추가 공백 기간이 불가피하다.

애초 문재인 정부는 집권 9일만인 5월 19일 김 권한대행을 소장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여야 간 정쟁에 청문회가 끝나고도 인준안 처리가 장기간 계류됐고 결국 이달 11일에 찬성 2표 부족으로 인준안이 부결됐다.

헌재 소장 후보자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내년 출범 30주년을 맞는 헌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기관의 위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헌재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반면에 김 대법원장 후보자는 8월 21일 지명돼 31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 등으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문 대통령과 여당이 “사법부 수장 공백을 막아야 한다”며 전폭적으로 지원한 덕을 톡톡히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대법원장 자리는 절대로 비워서는 안 되고 헌재 소장은 몇백일씩 비워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헌재의 중요 사건은 작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이 접수된 이후 재판관 공백까지 겹쳐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다. 지난해 말 선고 직전까지 논의가 무르익었지만, 탄핵심판으로 보류됐고, 이후 박 전 소장과 권한대행 이정미 전 재판관의 퇴임으로 재심리가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헌재는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현재의 8인 재판관 체제가 아닌 9인 체제에서 선고할 계획이어서 추가 지연이 불가피하다.

박 전 소장 후임으로 지명됐다가 주식투자 논란으로 낙마한 이유정 후보자의 자리를 메우고 차기 소장도 임명되려면 최소 1∼2달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추석 연휴와 국정감사를 고려하면 헌재의 실질적 업무는 빨라도 연말께나 정상화가 가능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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