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은 아도화상과 함께 영명사에 머물고 있었다. 영명사는 태왕이 즉위와 동시에 평양에 불사를 시작한 9개의 절 중 가장 위용이 크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좌우로 펼쳐진 기와지붕들이 황새처럼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태왕이 있는 강학소 대청마루까지 신라에서 파발마가 올라왔다. 가야와 왜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신라사신들의 연이은 요청에도 태왕은 고개만 끄덕일 뿐 행동은 느긋했다.

‘내물 마립간이 이사품왕에게 잡혔을 때 비로소 구원병을 보낼 것이다.’

오늘 광개토태왕은 태자 거련과 딸 상희, 그리고 고구려에 온 질자들을 영명사로 불러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고구려에 온 질자들은 가야의 대장군의 아들 꺽감, 백제 아신왕의 딸 다해, 신라 내물마립간의 사촌동생 실성, 왜의 목라도자, 후연의 모용제였다. 그밖에도 각나라에서 고구려로 끌려온 왕자, 공주, 귀족의 자제들이 영명사 대청마루에 모여 광개토태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질자는 사실상 나라를 불신하는 데서 인질로 잡아두는 일종의 협박행위이다. 태왕도 그런 의미로 잡아두고 있다. 하지만 태왕이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 교육을 시키는 것은 질자를 통해 국가 간 군신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전쟁을 방지하고 장차 태자 거련의 시대에 태자를 도와 고구려와의 우호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태왕은 공자의 논어를 꺼내어 보며 말했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하인으로부터 마구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희들이라면 무엇을 먼저 묻겠는가?”

거련이 먼저 대답했다.

“그야 마구간에 불이 났으니 당연히 말이 타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먼저 물을 것입니다.”

“거련, 잘했다. 당연히 이치에 맞는 말이다.”

태왕은 거련을 칭찬하면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생각을 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때 신라의 질자 실성이 말했다.

“공자께서는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 물어도 말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도 않았습니다.”

“음, 좋은 대답이다. 공자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말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 신라의 실성군은 그동안 부쩍 많이 성장했구나.”

그때 꺽감이 손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가 만일 공자라면 사람뿐만 아니라 말에 대해서도 물었을 것입니다. 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진 소중한 존재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한 동물이기 때문에 불에 타 죽으면 큰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태왕은 꺽감의 대답이 기특해 무릎을 칠 뻔 했지만 끙하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아들 대신 꺽감이 약동하는 물결처럼, 전진하는 수레바퀴처럼 치고나가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우리말 어원연구

물결. 【S】mrsu khiyuuli(무르수 키유울리), waves of waters. ‘키유울리’는 ‘끌어당기다’는 뜻으로 물을 끌어당기는 모습이 바로 물결이다. ‘키유울리’를 빠르고 단순하게 발음하면 ‘결’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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